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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에 화낸 아버지 위해, 파리에선 금 딸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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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이 도쿄올림픽 동메달을 들고 웃었다. 김민규 기자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이 도쿄올림픽 동메달을 들고 웃었다. 김민규 기자

“올림픽 준비할 땐 시간이 참 더디게 갔는데, 요즘은 눈 깜짝할 새 하루가 지나가요(웃음).”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27·KH그룹 필룩스)을 서울 용산역 앞 공원에서 만났다. 화보 촬영을 마치고 뛰어왔다는 그는 손 부채질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히느라 바빴다. 안창림은 “예능 프로에서 유재석 아저씨와 김구라 아저씨를 만났다. 올림픽 후 찾아주는 곳이 많아서 스케줄을 분 단위로 짜고 있다. 동메달이 이 정도인데, 금메달이었다면 정말 정신없었겠다”며 웃었다. 과거 인터뷰 때 유도복을 입고 매서운 눈빛을 발사했던 안창림은 이번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낯설었다.

안창림은 도쿄올림픽에서 큰 주목을 받은 스타다. 그는 두 번째 도전 끝에 올림픽 첫 메달을 따냈다. 지난달 26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르조프(아제르바이잔)에게 절반승을 거뒀다.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극적인 한팔 업어치기를 성공했다.

메달 자체도 그랬지만, 그의 스토리가 더 관심을 받았다. 안창림은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여섯 살 때 교토로 이사한 뒤 요코하마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유도 명문 쓰쿠바대학에 진학했다. 2학년 때 부도칸에서 전국대회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일본 유도계의 귀화 제의를 뿌리친 그는 2014년 용인대에 편입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서였다.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7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딴 안창림은 환하게 웃었다. 송대남 대표팀 코치가 그를 번쩍 들어올리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 열심히 했다”고 축하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감내한 힘든 훈련이 떠올라서였다. 그의 감동 스토리에 많은 이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어린 시절 안창림(오른쪽)과 아버지 안태범씨. [사진 안창림]

어린 시절 안창림(오른쪽)과 아버지 안태범씨. [사진 안창림]

단 한 사람은 기뻐하지 않았다. 안창림 아버지 안태범(57)씨다. 안창림은 “시상식 전에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기뻐서 울고 계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전화를 안 받으셨다. 우승하지 못한 게 못마땅하신 모양이었다. 화가 많이 나신 상태였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교토에서 접골원을 운영하는 안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라테 도장 사범이었다. 안창림이 여섯 살 때 유도를 배우게 한 것도 아버지였다. 승리욕이 강한 안씨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본 최고, 세계 최고 무도가의 꿈을 아들이 대신하길 바랐다.

학창 시절 안창림이 대회에 나가 패한 날에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창림은 “올림픽이 끝나고 사흘 뒤 아버지가 연락을 주셨다.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머니가 시켜서 마지못해 전화하신 것 같다. 아버지 화가 풀릴 때까지 며칠간 대화하지 않은 적이 많아서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안씨도 보이지 않는 데선 끈끈한 부정을 드러냈다. 안창림의 부모는 올림픽 기간 내내 부도칸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장을 찾을 수 없었지만, 멀리서라도 아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안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매일 송 코치를 통해 전달했다. 송 코치는 “내가 창림이의 ‘반찬 셔틀’을 했다. 아버님이 ‘창림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매일 오셨다. 아들 몸 상태를 물으며 음식을 전해주시는 마음에 감동했다”고 전했다.

안창림은 아버지의 채찍질로 인해 자신이 더 강해졌다고 믿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지켜낸 국적을 나도 이어간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덕분에 한국 국적과 이름(安昌林)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덤비는 유전자를 무도 선배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했다.

안창림은 중학교 시절 일기장에 “내가 지면 가족이 운다. 할아버지를 떠올리자. 동급생, 동포가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마. 유도는 전투다. 지면 죽음을 의미하고, 이기는 건 삶을 의미한다. 약점을 보이지 말자. 유도는 나 자신의 거울이다. 센스가 없다면 3배 더 노력하자”라고 적으며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안창림은 도쿄에서 귀국한 다음 날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당분간 운동은 쳐다보지 않겠다’는 동료 국가대표 선수들과 다른 행보다. 안창림은 “3년 뒤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아무리 바빠도 느슨해져선 안 된다. 파리올림픽에서는 꿈에 그리던 금메달 따서 아버지와 통화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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