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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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사람들끼리 빈정대는 말이 있다. 소련엔 다섯가지의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누구도 찬성하지 않는 정책을 결정하는 일. 둘째,그 정책이 시행되어도 상점엔 여전히 물건이 없는 일. 셋째,물건은 없는데 시민들은 무엇이든 갖고 있는 일. 넷째,무엇이든 갖고 있으면서도 만족하는 시민은 아무도 없는 일. 다섯째,만족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 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옆엔 「굼」이라는 국영백화점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해 마지 않는 곳이다. 여기 구두가게 앞엔 부츠를 사려는 여성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가지 신기한 일은 앞에서 있는 사람들이 술술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우리 같으면 이 신발,저 신발 고르고 또 고르고,거울 앞에서 그것을 몇번이나 신어보고 나서 사든지 말든지 할텐데,그러는 사람이 없었다. 상점이 주는대로 군소리 없이 장화를 받아가지고 돈을 치르고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발의 치수까지 모두 같다는 말인가. 나중에 들은 얘기가 기막히다. 고객들은 맞는 부츠를 고르는 일은 둘째 문제고,신발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것은 가게 밖에서 고객들끼리 해결할 일이다.
소련의 농촌에선 가축들에 빵을 주는 일이 있다. 물론 밀기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빵을 주는 쪽이 훨씬 값이 싸다. 소련의 빵값은 1백원(8카베이카)짜리부터 있는데,그 값은 시장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정부가 고시가격으로 묶어 놓은 값이다. 웃지 못할 일은 그것이 밀가루값보다 싸다는 것이다.
소련의 아파트촌엔 아침마다 마당에 빈 바구니가 놓여 있다. 며칠 묵어 굳어진 빵을 수집하는 바구니다. 이것들은 농촌으로 넘겨져 가축의 먹이가 된다.
소련의 생산공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시장경제다. 기업이 사유화되면 필수적으로 종업원의 수를 줄여야 한다. 종업원들은 실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련 최고회의는 엊그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청산하고,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결의했다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첩첩산들을 탈없이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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