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경제 충격 줄일 대비책 필요|개산도 못해본 엄청난「통일 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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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만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40여년 동안 대립된 이념·세계관에 입각해 살아온 두 개의 「집단」을 하나로 묶는 과정은 엄청난 경비와 대가를 요구한다.
사유 재산·시장 기능·경쟁이 있고 없는 두 체제간의 경제 통합은 통합으로 불어난 전체적인 부보다 그것을 나누어 가져야 할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데 따른 문제가 더 많다.
통일이 되면 40∼50대의 나이에 직업을 바꾸어야할 사람이 수두룩하게 생기고 순서만 기다리면 가질 수 있었던「나의 집」을 영원히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통일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엄청난 「비용」이 들고 구성원 각자의 삶에 희생과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통일의 길목에서 동서독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과제가 바로 좋은 교훈이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려면 과연 얼마만한 비용이 드는가. 그 비용은 남한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그렇게 될 때 남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세금을 내고 생활이 어려워지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우리 정부나 학계 등이 아직 구체적 연구나 대비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나 북한의 고려 연방제 통일안 어디에도 경제 통합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그 비용을 계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통독 과정이 교훈>
다만 정부 일각의 실무자들간에 독일처럼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남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근거로 해 한가지 경우의 부담액을 대충 계산해 본 것은 있다.
산출 과정은 이렇다. 남북간 경제 격차의 확대를 가져오는 통일이라면 북한이 그런 통일에 응할 리가 없으므로 통일 이후 5년간 북한이 통일 직전 (현재) 남북한의 소득 격차 (5대 1)를 3.3대 1의 수준으로 올리자면 북측에 얼마나 추가 투자를 해야할 것인가 하는 것만 따져본다는 것이다.
우선 통일이 안되더라도 가능한 성장률을 적용해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5년간 합계한 뒤 현재의 남북한 소득 격차 비율로 곱해준다. 그러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 한사람이 5년간 당연히 얻어야할 소득이 계산된다.
이 몫에서 통일이 되지 않았을 때의 북한 즉 성장률로 북한 주민 1인이 얻을 수 있는 5년간의 소득 합계를 빼면 현재의 소득 격차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 주민 1인이 5년간 추가로 획득해야할 소득의 합계가 나온다.
이 수치에 북한의 연평균 인구수를 곱하고 다시 투자 승수를 역으로 곱해주면 북한에 추가로 필요한 투자액이 나오는데 이 액수만도 5년간 86.5억 달러 (6조1천4백l5억원)가 된다는 것이다. 작성자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부의 변수와 정의 변수를 얼마나 넉넉하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이같은 계산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이 계산법은 현재 북한의 산업 시설 사회 간접 자본들이 통일 이후, 즉 국제 분업에 편입돼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가치 창출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독의 기업인들이 동독의 산업 시설을 「쓰레기」라고 결론지은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시설이 워낙 노후해 도저히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동구 국가에서 가장 선진국이라는 동독이 그러할진대 북한의 경우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통일 이후 북한의 소득 증가율을 어떤 식으로 가정해 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될 가능성이 크다.
또 현재의 남북한 소득 수준의 격차를 통일 이후 5년간 유지하는 정책이 과연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서독이 바로 단계적인 경제 통합 과정을 상정했으나 동독인들의 대규모 유입으로 그 정책이 전면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의 소득 수준, 다시 말해 임금 수준을 통일이후 당분간 유지하려 할 경우 젊고 적응력이 뛰어난 동독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독의 직장으로 옮기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동독의 노동 시장은 공동화하며 서독의 시장은 교란되어 사회적 불만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독은 여러 가지 부담을 안고 동서독의 임금 수준, 즉 소득 수준을 3년 이내에 일치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을 유지해 나가자면 서독 정부의 재정 부담은 크게 가중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가 변변치 않은 동독이 임금 수준마저 서독과 큰 차이가 없다면 자본 유치에 어려움을 맞게될 것이고 자연히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어 세수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남북한의 경우에도 거주 이전·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단계적 경제 통합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현실성을 갖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득 개념에 의한 통일 비용의 산출이 무모한 까닭은 사회주의 국가의GNP개념이 자본주의 체제의 개념과는 다르고 모호하다는 점에 있다.
사실 사회주의 체제의 GNP는 우리와 계산법이 다르고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도표에서 보듯 동독의 경제 지표는 우리보다 월등하다. 특히 1인당 GNP의 경우 우리의 세배가 되지만 동독의 체감 생활 수준은 우리보다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동독의 차량 보유 대수는 3백70만대로 인구비를 감안, 우리의 2백여만대 보다 월등하게 앞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용차가 우리의 포니 수준에도 못 미치고 그나마 전체의 80% 가까이가 차령 5년이 넘는「고물」이며 심지어 20년 이상의 것도 16%나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88년 전화 보급률은 7%에 지나지 않아 우리의 67%와 큰 대조를 이룬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이고 정보가 곧 자산인 시대다.
그런데 동독에서 서독에 전화하는 것도 어려워 1주일이나 열흘 단위로 묶어 자동차로 가장 가까운 서독 국경을 넘어와 전화를 거는 형편이라고 한다. 전화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며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
북한 역시 공교롭게도 전화 보급률이 7%에 불과하며 자동차 보유 대수는 그나마 25만대 수준이다.
이렇게 수치상의 경제력과 현실이 다른 점을 감안, 독일에서는 아예 토지와 노동력 이외에는 동독의 경제력을 「제로」로 생각하자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최근 킬대의 세계 경제 연구소는 「다섯명의 현자」 가운데 하나인 지베르트 교수의 주관아래 통독 비용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독의 자본스톡, 즉 국부는 10조7천2백50억 마르크인데 이를 동서독의 인구비 (26%)로 보면 동독의 경제력이 서독의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2조7천8백억 DM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화 보급률 7%>
이를 다시 부문별로 나눌 때 산업 시설 (기업)이, 1조1천50억DM, 주택 분야가 1조1천1백억 DM, 도로·교통·통신 등이 5천억 DM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업 시설과 주택은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면 부수적으로 민자의 유치가 가능하므로 그것으로 점차 상쇄할 수 있고 도로·통신망 가운데에서도 새로 길을 닦는 것이 아닌 한 40%정도 건질 수 있다고 할 때 결과적으로 통일 비용은 3천억 DM (1천7백여억 달러)∼4천억 DM (2천3백여억 달러)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즉 새로 필요한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액을 통일 비용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동독 기업의 생산성이 서독의 50%이라고 할 때 현재의 실업자 (30여만명)가 2백만으로 늘어날 것이며 연금 생활자를 2백20만으로 잡아보면 각각의 사회 보장 비용이 연간 2백억 DM, 1백85억 DM이 추가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동독 국영 은행의 채권이 2천억 마르크이지만 대외 채무 34억 동 마르크, 개인과 기업의 저축이 각각 1천7백60억, 6백억 동 마르크라고 할 때 통화 단일화의 비율에 따라 교환해주려면 이 은행의 부채 및 화폐의 실질가치와 명목가치와의 차액도 서독이 부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독 연방 정부는 벌써 올 들어 두번의 추경 예산 (거의 통일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에서 54억여 달러 (40조원)를 편성했고 최근 3차 추경 예산을 다시 편성했다.
그러나 이 모든 편린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경제 체제를 통합한다는 것의 방대함과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정치·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통일 비용의 계산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이런 계산을 해본 사람도, 계산해볼 자료도 아직 없지만 주먹구구로만 따져봐도 남북한의 소득 수준 격차가 1인당 5천 달러 대 1천 달러니까 이를 같게 하자면 천문학적 투자가 불가피할 것이다. 또 우리가 북한 외채를 갚아준다면 그것만도 최소한 50억 달러는 된다고 본다. 이렇게 한두가지만 손쉽게 따져봐도 통일에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비용이 들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경제기획원의 대외 경제 조정실을 중심으로 재무·상공 등 관련 부처의 과장급 공무원 10여명이 지난달 동서독 경제 통합 연구를 위한 단기 조사반을 구성,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 조사를 토대로 곧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경제 통합 연구단을 발족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KDI도 곧 북한 경제 연구 센터를 설립한다는 것이며 앞으로 모든 연구에서도 북한 경제를 국내 경제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통일 비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단에 따른 손실도 있다.
우선 과중한 국방비가 그렇고, 통일논의를 둘러싼 사회 세력간의 갈등에서 오는 국력의 소모도 적다고 할 수 없다.
또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투자 의욕을 감퇴시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기기도 하며 자원의 효율적 이용에도 많은 왜곡이 생긴다.
반면 경제 통합이 이루어지면 이 모든 분단의 손실이 제거됨은 물론 내수 시장의 확대로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따라서 통일 비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드니 통일을 하지 말자는 주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급적 국민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 구성원의 고통을 억제하는 형태의 경제 통합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이런 뜻에서 「통일의 비용」은 아무리 연구되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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