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제 질서 시험하는 복잡한 국익 다툼|중동 사태 발발 6주…재편되는 세계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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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일 헬싱키 미소 정상 회담이 페르시아만 사태를 위한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함에 따라 이라크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 상태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빚어진 페르시아만의 긴장 상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승인 아래 여러 나라가 군대를 파견, 약소국 침략에 신속히 대응했다는 점에서 군사력을 통한 국제 분쟁 해결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사태 발발 4일 후인 지난달 6일 미국은 인질 구조 특공대를 페르시아만에 급파하는 한편 이어 지난달 8일에는 공정대 및 전투기를 파견하고 지중해 함대를 페르시아만으로 발진시켰다.
미국은 17일 현재 육·해·공군을 망라한 병력만 10만명이 넘게 페르시아만 주변에 배치했으며 케네디·사라토가·아이젠하워·인디펜던스호 등 항공 모함 4척을 포함, 미사일 순양함·전투함 등 함정 60여척을 페르시아만·아라비아해·홍해·지중해 등에 집결시켜 이라크 해상 봉쇄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은 7함대의 항모 미드웨이호를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증파, 해군력 증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25일 유엔이 대이라크 무력 사용을 승인한데 고무된 세계 각국이 속속 군대를 파견, 대이라크 봉쇄에 참여하고 있다.
다국적군 가운데 이집트와 모로코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상군으로 5천명, 1천명씩 파견했으며 영국은 병력 3천명과 함께 전투기·지대공 미사일·구축함 등을 파견했다.
이밖에 프랑스가 병력 9천명과 항공 모함 1척 등 군함 7척, 서독이 소해정 5척, 시리아가 사우디와 아랍에 미리트에 4천명, 네덜란드가 프리깃함 2척, 캐나다가 구축함 등 함정 3척, 벨기에가 기뢰 소해정 2척등 함정 3척, 호주가 프리깃함 2척, 이탈리아가 프리깃함 2척 등을 파견·배치하거나 배치 중에 있는 등 모두 26개국이 대이라크 군사 제재 조치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25만명까지 병력을 증강 배치하겠다는 계획으로 있어 지난 1944년6월6일 항공기 1만3천대·함정 6천척·병력 1백만명을 동원, 2차 대전의 전세를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래 최대의 연합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이라크도 지난 10년 동안 이란과 전쟁을 수행한 결과 적지 않은 군사력을 보유, 육군이 탱크 5천5백대에 병력 98만5천명에 달하고 있다. 공군은 전투기·폭격기 등 7백여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사일도 3천5백기나 된다.
이라크는 이밖에 이란과의 전쟁에서 실전에 사용한 적이 있던 치명적인 화학 무기를 다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다국적군의 군사 행동에 적지 않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
특히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억류 외국인들이 이라크 영토내 공습 가능한 지역에 분산 배치돼 미군사력 사용에 대한 자제를 촉구하는 국제적인 여론이 일고 있다.
9일 미소 정상 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군사력 사용 계획이 없음을 명백히 해 당분간 군사력 사용에 의한 해결 시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만 사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소련의 동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제2차 회의에 참석했던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몇년 전만 해도 이같은 다국적군의 중동 파견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동서냉전의 종식과 함께 찾아온 소련의 변화는 2차 대전 이후 국가 이기주의에 의해 유지되던 군사력의 개념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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