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미아”… 주 동독소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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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둔명분 잃자 극우세력들의 잇단 테러로 수난/소군 강ㆍ절도에 주민반발… 동독과 미묘한 갈등
동독주둔 소련군에 대한 동독극우세력의 테러가 최근 들어 급증,통일을 보름남짓 남겨놓은 시점에서 동독과 소련사이에 미묘한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소련군에 대한 동독인들의 테러는 올해들어 동독경찰이 공식집계한 것만도 80여건으로 총격ㆍ구타ㆍ방화ㆍ독가스 살포 등 형태도 다양하다.
공격대상은 쉽게 눈에 띄는 정복차림의 소련군이 대부분이지만 최근들어서는 군속에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심각한 양상이다.
7월초 동독 비스마르크시의 소련군기지에서 보초를 서던 한 소련군병사는 등뒤에서 다섯발의 총격세례를 받았고 이보다 1주일뒤에는 이곳의 소련인학교에 투석사건이 일어나 한 학생이 유리창 파편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8월10일 밤에는 라이프치히시의 소련군 거주지역에 독가스탄이 투척되기도 했다. 8월22일에는 퓌르스텐베르크시내를 달리던 소련군버스에 방화사건이 있었다. 이밖에도 8월말에는 소련군 보초에 대한 총격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최근 들어 소련군 및 그 가족에 대한 독일인들의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소련군의 서부 전역군(WGS) 총사령관 미하일 칼리닌중장은 동독군 총사령관 앞으로 보낸 항의서한을 통해 이러한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소련군이 이러한 테러에 대해 아직은 합법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사태가 계속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때 사회주의 종주국 군대로 동독주민들의 환대속에 위세를 누렸던 소련군 최정예군단인 서부전역군소속 동독주둔 36만3천명 소련군의 신세가 이처럼 처량해지기 시작한 것은 7월1일 동서독이 화폐ㆍ경제ㆍ사회통합을 이룬 이후부터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통독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소련군 주둔 명분이 떨어져 갔으며 급기야는 소련군인들이 동독주민들의 공격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동서독이 사실상 통일이 다된 요즈음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는 소련군 병사들의 모습은 예전의 당당함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풀이 죽어 있다.
군기의 상징이랄 수 있는 군모가 동독군모자와 함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길거리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사실이 그들의 사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양독의 경제ㆍ사회통합 이후 소련군도 서독마르크화로 봉급을 받게 됐지만 동독물가 역시 서독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에 월급이 25마르크에 불과한 사병은 하루에 맥주 한잔ㆍ담배 몇개비도 살수가 없게 됐다. 형편이 이렇듯 어려워지자 이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자구책이란 다름아닌 절도와 강도다. 이곳 언론보도에 따르면 소련군 병사들은 병영내에서 돈이 되는 물건은 모조리 훔쳐 내다 판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군모를 비롯,코펠ㆍ휘발유등을 내다 파는 것은 물론,심지어는 칼라시니코프자동소총까지 훔쳐 1천마르크에 암시장에서 팔고 있다.
또한 군복을 입은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소련군 병사도 나타났으며 쓰레기장을 뒤지는 정복차림 소련군 병사의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들은 비교적 얌전한 축에 든다.
최근 들어 동독주민을 상대로 한 소련인들의 강ㆍ절도 사건이 부쩍늘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소련군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감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8월말까지 동독경찰이 공식집계한 소련군의 동독주민에 대한 강ㆍ절도 건수는 4백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5%가 늘었다.
소련으로 철수를 해도 당장 거주할 집이나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소련정부도 처리에 골치를 앓고 있는 동독주둔 소련군들.
94년까지라는 시한부이긴 하지만 독일땅에 남아 있으며 인간이하의 생활과 테러의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은 냉전시대가 낳은 이 시대의 미아라 할 수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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