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4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3부 남로당의 궤멸/악화가 양화 구축한 남로당/박헌영 뜻과 반대로 이승엽ㆍ조두원이 장악
드디어 정태식이 이승엽에 의해 해방일보 논설위원직을 쫓겨나고 말았다. 남로당 출신으로는 나혼자 남게 되었다.
나도 얼마후에는 추방당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것은 이원조가 남로당대표 노릇을 하는데 방해가 됐기 때문이다.
정태식은 해방일보를 물러난 후 채항석의 집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는 부인도 죽어 없고 아무데도 갈데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채의 아내 장병민은 인민군 병사의 오발로 총알을 다리에 맞아 거동을 못하고 있었다.
정태식은 퇴직 근신중이니 배급까지 중지당해 한국은행 부총재 채항석의 배급을 얻어 먹게 되었다. 나는 정태식의 이같은 처지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서울시 인민위원회로 조두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조의 방에는 사람들 출입이 빈번해 깊숙한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2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청했다. 그는 비서를 시켜 회의중이라고 사람을 들여 보내지 말라 했다. 『정태식과 김삼룡 동지는 전쟁이 이렇게 일찍 일어날줄 몰랐다. 김동지는 지하당을 살리기 위해 정동지에게 전향해 살아서 나가라 한 것이다』라고 내가 입을 떼었더니 그는 그 얘기는 이순금 동지에게서 들었다고 하면서 이승엽 동지가 정태식 동지를 안좋아하니 그게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나는 답답해 『왜요?』하고 물었다. 그는 『내 추측으로는 해방직후 정동지가 이동지를 잘못 본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정태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해방직후 이승엽을 존경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 자신도 전향해 인천 식량영단 이사까지 한 자가 갑자기 출세하려고 덤비는 그를 존경하지는 않았다. 이승엽과 조두원은 일제때 전향한 사람들로 서로 마음도 맞았고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박헌영은 48년 평양에 정권을 수립할때 이승엽과 조두원을 믿을 수가 없어 남에 두지 않고 북으로 불러들이고 김삼룡ㆍ이주하와 정태식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불변하리라 믿어 지하당을 맡겼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와보면 김삼룡과 이주하의 목숨을 잃게 했고 정태식은 정치적 생명을 잃어버려 결과적으로 박헌영의 당초 본의와는 반대로 이승엽과 조두원 등과 같은 진짜가 아닌 자들이 남로당을 장악하게 되고 만 것이다.
『박헌영 선생은 해방전에 전향한 동지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능력에 의해 대담하게 등용하지 않았습니까. 정태식 동지와 같이 유능한 동지를 이대로 매장해 버리는 것은 당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봅니다. 조동지께서 이승엽 동지에게 한번 말씀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나는 정태식의 재등용을 조두원에게 부탁해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는데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라도 해결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전쟁이 언제 끝나고 또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데 정태식의 재등용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았다. 결국 정태식을 정치적으로 죽여버리고 나를 거세하고 지하당까지 자기들이 쥐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되고 말았다. 남이나 북이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권력은 야심가들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조두원의 말에 실망하면서 끝으로 답답한 마음으로 『이 전쟁은 누가 어떻게 해 일으켰습니까?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고 물어봤다.
조두원은 눈을 껌벅거리며 마른 말(마)과 같이 긴 얼굴에 정색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모르오. 절대 비밀이오. 김일성 동지가 박헌영 선생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 한 것 같소. 이것은 내 개인의 말이오. 절대 박헌영 선생이 말씀하신 것 아니오. 말나면 큰 일 나요.
김일성 동지가 금년 2월께인가 평양에 없었어요. 지방에 휴양갔다 했는데 사실은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 동지를 만났어요.
그랬으면 정치위원회에 보고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위원회에까지도 감추었어요.
4월 초에 김일성으로부터 갑자기 정치위원회를 연다는 통보가 왔더래요. 의제가 무엇인가도 알리지 않고. 보통 정치위원회 개최에는 사전에 의제가 결정돼 위원들에게 알리고 비서들이 연설원고까지 미리 작성해주는데 그날 밤에 김책(당시 부총리)이 찾아왔더래요. 김일성이 보내서 왔다고. 비로소 회의내용을 이야기하고 무조건 김일성 동지의 결정에 찬성해 달라고 했다는 거요.』
나는 『그러면 박헌영 선생이 그 정치위원회에 출석하실때 이남에서 김삼룡 동지가 체포된줄 알았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나는 몰랐어요』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박헌영 선생은 회의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정치위원회에서 하는 연설은 본인이 연설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사무국 비서들이 미리 써서 주는대로 읽는 것 뿐입니다.』
그는 이같이 당시의 실상을 알려주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