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외환보유액 '비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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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간은 꽉꽉 차고 있는데=한국은 중국.일본.러시아.대만에 이어 세계 5대 외환보유국이다. 한은이 2일 밝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10월 말 현재 2294억6000만 달러다. 10월에만 12억4000만 달러가 불어났다. 한은은 "보유 외환의 운용 수익이 늘어난 데다 미국 달러화 약세에 따른 기타통화 표시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탓에 우리 경제의 지휘봉을 국제통화기금(IMF)에 넘겨야 했던 때와 비교하면 커다란 반전이다. 97년 11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중 실제 가용액은 93억 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만기가 다가온 단기차입금 100억 달러를 갚기에도 모자랐다.

◆ '외환 과식' 후유증=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국인 중국은 요즘도 매달 160억 달러가 중앙은행 금고에 쌓인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와 외국인 투자자금이 밀려들기 때문이다.하지만 중국 외환 당국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불어나는 외환으로 득보다 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물가가 꿈틀거린다. 넘쳐나는 달러를 흡수하느라 위안화가 시중에 풀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은행들은 무분별한 대출 경쟁을 벌여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또 대외적으로는 위안화 절상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한국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외환 당국이 달러를 매입하면서 지불한 원화가 시중에 풀리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은 부동산 중심의 자산 인플레 앞에선 큰 효과가 없다. 인플레 압력의 김을 빼기 위해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풀려나간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통안증권에 붙는 이자가 눈덩이처럼 증가하고 있다. 이 게 과다한 외환관리 비용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은은 "올 들어 9월까지 통안증권 지급 이자만 5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연말까지 통안증권 이자로만 6조원을 내줘야 할 판이다.

◆ 양보다는 관리가 중요=현재 외환보유액이 우리 경제 규모나 통상 구조를 감안하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한은 국감에서도 우제창(열린우리당) 의원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IMF 기준보다 지난해 986억 달러가량 넘친다"고 주장했다.

한은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한은 국제기획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 핵실험에도 금융시장이 흔들리지 않은 건 바로 든든한 외환보유액 덕이라는 게 한은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적정 규모 논쟁과 별개로 미국 국채에 편중된 운용을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체 외환보유액의 95%가 미국 국채 등 채권 상품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책임질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보수적 자세가 반영된 포트폴리오라는 지적도 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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