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둑 터졌다” 방송에 숨막히는 대피/「고도」 주민들 발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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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들녘 5천㏊ 순식간에 물바다/물이 목까지 찬 소떼들 허우적/본사기자 일산침수지 헬기동승 취재
【육군ㆍ경찰 헬리콥터상에서=김창욱ㆍ김종혁기자】 12일 밤새 시민들의 마음을 졸이게하던 한강하류 범람이 이날새벽 마침내 현실로 뒤바뀌는 순간 경기도 고양군 지도읍ㆍ일산읍ㆍ송포면 등 일대는 삽시간에 강ㆍ육지를 분간할 수 없는 물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12일 오전3시50분 행주대교 하류 1㎞지점인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 5m높이의 한강제방 2백여m가 불어난 물을 견디지 못하고 유실,흙탕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토당4리 주민1천2백여명은 넋을 잃었다.
한강범람 우려속에 마음을 졸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주민들은 오전3시50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한강둑이 터졌다』는 마을방송에 황급히 대피길에 나섰다.
고지대로 이동한 소떼들은 물이 목까지 차오르자 허우적거렸고 추수기를 맞아 누렇게 익어가던 곡식들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수중에 솟은 전신주가 도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을 뿐 도로를 찾아볼 수 없었고 외딴섬처럼 고립된 고지대 주민들은 구조의 손길이 닿지않자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 했다.
12일 오전9시 현재 고양군 일산읍ㆍ지도읍ㆍ송포면 등 3개읍ㆍ면의 83개리 5천5백86㏊가 침수됐고 제방복구가 늦어져 벽제ㆍ원당 등지로 침수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침수된 지역의 1만1천6백89가구 4만5천여 주민이 일산여중고 등에 긴급 대피했다.
◇붕괴=제방이 무너져내린 지점은 행주대교에서 하류1㎞지점으로 무너진 둑은 2백여m.
강물이 쏟아져내리자 둑 바로옆 신평리ㆍ토당리일대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피신했고 길게 뻗은 둑위에는 주민들이 옮겨놓은 TVㆍ냉장고 등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제방이 붕괴되자 군청당국은 긴급사이렌과 함께 『한강둑이 터졌으니 긴급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거듭,이에 토당리주민 1천2백여명이 잠결에 수라장을 이루며 고지대로 긴급대피했다.
순식간에 들판에 쏟아진 물은 토당리일대 주택가를 덮쳐 불과 1시간만에 깊이 1∼4m로 지붕만 남기고 완전히 물바다를 이루었다.
◇주민대피=토당4리는 갑자기 불어난 물로 도로가 잠기면서 고립된 마을.
고지대 50여가구 2백여주민들은 바로 눈앞 2㎞지점에 침수되지 않은 육지가 보이지만 구조의 손길이 닿지않아 구조헬기가 상공을 선회할때마다 고지대로 몰려들어 『살려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범람한 강물로 일산읍 산황리 주민 40여명 등 8개리주민 5천여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고 있고 CBS(기독교방송)송신소가 침수돼 오전 6시30분부터 서울ㆍ경기지역의 방송이 중단되고 있다.
또 송신소 직원8명도 건물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구조=사고가 나자 고양군 재해대책본부는 중앙재해대책본부에 팔당댐 방류량을 줄여줄것을 요청하는 한편 군장병 2만여명을 포함한 군ㆍ경 및 민방위대ㆍ부녀회원 등으로 구조반을 편성해 긴급구조작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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