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너 …살생부에 올려 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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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가네코 슈스케
출연:후지와라 다쓰야.마쓰야마 겐이치.가시이 유
장르:판타지
등급:12세

20자 평:인간이 정의의 심판자가 될 순 없다

살다보면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순간이 있다. 도덕적으론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죽이고 싶은 사람을 진짜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손에 쥔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현실에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영화 '데스 노트' 속 세상에선 가능하다.

영화는 같은 제목의 베스트셀러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만화는 일본에서 2100만 부 넘게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2년간 판매량 1위를 자랑하고 있단다. 2부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만화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2일 국내 개봉한 것은 1편이며, 2편은 내년 1월에 선뵐 예정이다.

이야기는 미래의 경찰을 꿈꾸는 야가미 라이토(후지와라 다쓰야)란 학생이 죽음의 신 류크가 떨어뜨린 '데스 노트'(죽음의 공책)를 줍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공책에는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실제로 죽어버리는 믿을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라이토는 데스 노트를 이용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악질 범죄자를 차례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는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대중은 정체불명의 살인자를 '구세주 키라(킬러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르며 떠받든다. 바로 이때 천재탐정 'L'(마쓰야마 겐이치)이 등장한다. 그는 놀라운 직관력과 관찰력으로 키라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 나가고, 마침내 라이토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여기서부터 펼쳐지는 두 사람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제법 흥미롭다.

종교.윤리적으로도 재미있는 대목이 많다. 신도 아닌 인간이 선과 악을 판단한 뒤 악을 처벌하는 심판자가 된다는 것은 기독교의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선악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라이토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신이 사과를 즐겨먹는 것도 선악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에게 도전한 아담이 결국 낙원에서 추방됐듯 '사이비 구세주'인 키라도 결국 원하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에 물들어 간다. 이름의 한자도 의미심장하다. 야가미(夜神)는 어둠의 신이고, 라이토(月)는 달이다. 달은 보기에 따라선 늑대 인간이 악의 정기를 받는 대상이기도 하고 음양학에서 말하는 음(陰)의 화신이기도 하다.

다만 영화는 아무래도 만화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12권짜리 만화를 2부작 영화로 옮기려면 엄청난 생략과 압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된 죽음의 신도 애니메이션이 아닌 극영화의 캐릭터로는 아무래도 어색해 보인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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