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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채소·과일에 묻어 식탁까지 위협|농약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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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농약공포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식량증산을 위해 뿌리는 농약이 잇단 중독사고로 농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몰론 토양·상수원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농약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농약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는 많은 농민들이 함부로 이 약 저 약을 섞어 쓰거나 지나치게 농도를 짙게 해 뿌리는 등 오·남용을 일삼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이렇게 뿌려진 농약이 식품·과일 등에 잔류돼 우리의 식탁에까지 올라와 농약공해는 이미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이제 아무도 농약으로부터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약 저약 섞어 써>
농약사용량도 해마다 늘어나 68년 1천6백t에 불과했던 것이 88년 2만1천9백67t으로 20년간 무려 14배나 증가했다. 지난해는 2만2천t이 전 국토에 뿌려졌으며 올해도 지난해보다 약간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계사들은 농약사용이 늘어나는데 대해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이 병충해에 약해 농약살포 횟수가 많아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해충의 농약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약살포 횟수와 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농약중독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7윌 농민 이 모씨(47·경기도 안성군 공도면)는 집 앞 논에서 농약을 뿌리다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숨졌다. 이씨는 평소에도 농약만 뿌리고 나면 팔다리가 지리거나 어지럼증과 구토증을 호소해 왔다는 것이다.
『농촌에 한번 와 보세요. 농약 사용 철이면 농약냄새가 온 들판을 진동해요. 우리 농민들도 코를 막고 다닙니다.』

<살갗 부풀어올라>
숨진 이씨와 같은 마을에 사는 정 모씨(45)는 자신도 지난해 농약을 뿌리다 중독 돼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다면서『우리 마을 사람만 해도 거의 50%정도가 중독경험이 있다』고 말하고『요즘 들어 농약이 더 독해진 것 같아 농약 뿌리기가 점점 겁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사과·배나무 등 키가 큰 원예작물은 위쪽을 향해 뿌리기 때문에「농약 비」를 맞기 일쑤여서 중독사고의 위험이 더 크다.
경기도 능 곡에서 배나무를 재배하는 김 모씨(50)는『아예 농약을 뒤집어쓰면서 뿌리고 있다』며『방제 복을 입긴 하지만 한번 뿌리고 나면 두통은 예사고 피부에까지 묻어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농약을 먹고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김씨의 자조 섞인 말이다.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농약중독사고는 85년 1천5백61명, 86년 1천3백91명, 87년 1천4백 명, 88년 1천2백53명으로 85∼88년 4년간 5천6백11명이 농약으로 인해 숨지거나 중독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사고까지 합하면 농약중독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농민들이 농약의 효능을 불신, 지나치게 많이 뿌리거나 필요이상으로 농도를 진하게 해 뿌리는 경우가 많아 과일·야채 등에 잔류된 채로 소비자에게 유통되고 있어 농약잔류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농도를 맞추다 보면 해충이 죽질 않아요.』
이준기씨(42·경기도 평택군 고덕면)는『이 때문에 1등 품 사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쉴새없이 농약을 뿌려야 한다』며『사과의 경우 수확 때까지 대부분의 농가에서 30∼40회 정도는 뿌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또『생육기간이 2개월인 통배추도 5일에 한번정도는 뿌려 줘야 벌레먹지 않고 매끈해 보이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병충해에 특히 약한 고추의 경우는 아예 농약에 절여 놓아야 제대로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수확하기전 일정기간까지는 농약을 살포해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며 『오이 등 채소는 저녁에 뿌리고 아침에 따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이런 실정을 모르고 먹는 소비자들이 안쓰럽다는 이씨는『윤기 있고 잘생긴 과일이나 채소는 일단 농약을 많이 뿌린 것으로 의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농약의 오·남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곶감을 건조시키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명태·멸치에까지 부패방지를 위해 농약을 뿌린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유통기간이 짧은 딸기도 장기보관을 위해 뿌리는가 하면 심지어 지난5월에는 경남지방에서 향어·잉어등을 기르는 가두리 양식 장에까지 기생충 구제용으로 수족이 떨리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살충제「디프수 화제」를 뿌리고 있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농약은 침투 성이 강하기 때문에 농산물에 잔류되기 쉬워 장기간에 걸쳐 잔류농약이 있는 과일 등을 먹을 경우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발암·기형아 출산 등 인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농약들이 뿌려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농약피해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
지난해 발암물질인 알라가 함유된 자몽파동이 있은 후 사과·포도 등 원예작물에 사용이 금지된 B-9 수화 제(알라와 같은 성분)가 거봉포도의 성장억제제로 계속 사용되고 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생선에까지 뿌려>
경기도 안성에서 거봉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박 모씨(3l)는『B-9가 포도에 사용 금지된 것을 알고 있으나 대체농약이 없어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또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는 제초제 2·4D도 아무런 규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
다이옥신은 독성이 청산가리보다 l만 배나 강해 1㎍(1백만 분의 lg)의 극소량으로도 체중 50물의 사람 2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조수헌 서울대의대 교수(예방의학)는『다이옥신은 월남전 때 미군이 정글을 고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동물실험결과 발암·기형아 출산 등의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에 수입되고 있는 미국산 레먼에서 2·4D가 다량으로 검출되자 일본생활협동조합은 전국적으로 판매금지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2·4D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구미 각국에서는 과일류 및 식품에 대해 사용을 규제해 왔다.

<엄청난 독성 지녀>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농약은 4백67개 품목. 이 가운데 발암성 등 인체에 미치는 독성이 제대로 밝혀진 깃이 거의 없는데 다 자료도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농약은 토양에까지 침투해 토양오염을 증폭시키고 있다.
환경 론 자들은『과다한 농약사용으로 농토의 산성화가 심각한 상태』라고 들고『이대로 가다간 10년 도 못가 전 국토가 황폐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농약뿌린 논바닥에서 왜가리가 죽어 가고 있고 이제 농수로에서조차 미꾸라지는커녕 송사리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농촌은 이미 황폐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농민들도 이제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없겠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시민의 모임 강광파 이사는『농약제조업체도 이제는 판매에만 급급해 효능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부작용 등을 명확히 표기, 홍보에 주력해 농약으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열 공해추방운동 연합의장은『농약은 자연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만큼 의약품 이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며『미생물·천적·효소 등을 이용, 독성물질이 아닌 새로운 농약 대체 품을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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