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위에 세운 모스크바시/수백년 건물 붕괴 위기(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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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크렘린궁등 지반 주저앉아/대 박물관은 24시간내내 지하수 퍼내
소련 모스크바의 지반이 약하고 기존 대형 건물들의 부실공사로 모스크바 명물 건출물들이 붕괴위험에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바실리성당. 모스크바 시내의 풍경을 그린 그림엽서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이 성당건물이 위험에 직면해 있다.
5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건물이 지하의 썩은 버팀목 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다.
소련 지구물리학자인 알렉산드르 자이체프가 『그 건물은 코피속의 설탕같이 분해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아마 내년 볼셰비키혁명 기념일에 탱크대열이 붉은광장을 가로질러 퍼레이드를 벌일때쯤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성바실리성당 외에 모스크바시내의 수많은 건물들도 마찬가지로 붕괴위험에 처해있다.
도시 자체가 강ㆍ늪지ㆍ해자위에 건축된 데다 건물의 보수ㆍ유지도 수십년간 부실했던 탓이다.
크렘린궁 주변의 많은 건물들도 위험지역에 들어 있다. 모스크바시 위원회는 이미 2년전 특별위원회를 구성,손질을 해야할 3백2개 건물의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작업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면 개축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모스크바 국가박물관의 건축가 이고르 실린은 미국ㆍ서방국가들로부터의 자금지원 및 전문가 파견을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건물붕괴의 위험에는 과거 소련 지도자들의 불합리한 건축명령에도 그 원인이 있다.
스탈린의 지시로 세워진 레닌묘는 『진흙이 채워진 해자위의 시멘트 덩어리』라고 모스크바의 한 관리는 말하고 있다.
레닌묘의 무게에 눌려 진흙속의 수분이 빠져나가 지반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건물은 매년 4㎜씩 붉은광장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은 또 각료위원회 건물지하에 벙커 건축을 지시했었다.
그러나 당시 굴착작업이 건물에 심한 진동을 일으켜 현재는 건물 자체가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흐루시초프도 지난 61년 크렘린궁 지역의 사원들 사이에 의사당 건물 건축을 지시했다.
그때의 거대한 기초공사 때문에 19세기풍 크렘린궁ㆍ대주교관ㆍ성당들이 현재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땅을 파낼 때 주변지층에서 지하수들이 그곳으로 몰려들게 되고 그러한 지하수 흐름이 건물 밑바닥의 진흙ㆍ모래 등을 쓸어간 것이다.
그 결과 지반이 약해져 15세기풍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동남측 벽면이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에 있다.
역사적 기록ㆍ문헌들의 보고인 레닌박물관도 4년전 부근에 보로비츠키역이 신축될때 밑바닥이 갈라지는 악운을 겪었다. 최근들어 이 건물이 위험할 정도로 약해지자 박물관 관리들은 소장품들을 대체보관할 수 있는 장소 물색에 고심중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볼쇼이극장도 지하수 때문에 오른쪽 벽면 바닥이 그냥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를 만큼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다.
과거 표트르대제시대 이래의 구모스크바시 건물들은 약 2.5㎞에 달하는 해자를 메우고 그위에 건축되었다.
1872년에 지어진 폴리테크닉박물관이 그 대표적인 예.
이 박물관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데 늘어나는 지하수를 퍼내기 위해 지하실 바닥에 펌프를 설치,24시간 지하수를 퍼내고 있다.
제르진스키광장의 KGB본부 건물과 귀중한 예술품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트레치아코프 화랑도 마찬가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 왕국」이라 불리는 굼백화점의 불안정한 상태는 건축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중의 하나.
지하수가 증가,건물바닥이 가라앉고 있는데다 6년전에는 지하실 바닥에 큰 틈이 생겨나기도 했다.
더욱이 근처 중심가로부터의 차량 등에 의한 진동으로 인해 자칫하면 층계가 무너져 쇼핑객들의 다수가 다칠 수도 있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소련의 일부 관리들은 모스크바시내 건물의 붕괴위험을 소련 사회주의의 위기에 곧잘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사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만일 소련이 건물붕괴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면 도시자체뿐 아니라 더 나아가 소련 사회주의 자체가 지하로 몰락해버릴 위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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