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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80년대의 장막을 거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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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도 그럴 것이 민심의 또 다른 측면은 그들에게 여전히 고무적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의 원인 제공자로 북한 아닌 미국을 지목하는 것이 국민 다수의 현재 생각이다. 안보장사보다 반미(反美)장사가 이문이 더 많다는 것을 익히 잘 알기에 미군부대 이전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둘러싼 폭력의 난장판 또한 내심 싫지만은 않을 게다. 더욱이 이른바 보수이념의 메시지(message)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전달하는 메신저(messenger)의 공신력은 목하 부상 중이다.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헤매고 집권여당이 마흔 번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전패(全敗)를 기록해도 그들에게는 특별히 '비빌 언덕' 하나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980년대의 기억과 유산이다. 그때 그 시절 이후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진보와 민중, 반미와 민족, 혹은 자주와 평등이라는 담론이 굳건한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80년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권력이자 권력자원으로서 소위 진보정권의 무능을 감싸고 실정(失政)과 비리를 감추는 면책특권 같은 것이다.

80년대식 사고와 정서로 점철된 학교 교과서는 반(反)시장적 관점과 반미적 시각을 세대를 넘어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80년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눈과 귀에 익은 것이란 주로 시위 아니면 파업이었기에 불법과 탈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도는 가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이른바 386 출신은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교육계.언론계.출판계, 그리고 논술 과외시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막강한 중추세력으로 자라났다. 이들에게 편승하고 아부하는 것에서 출세와 매명(賣名)의 방편을 찾는 관료와 지식인 역시 언제나 공급초과다.

80년대가 이룩한 위대한 성취와 도약을 감히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안타까움의 시작은 80년대의 정치적 권력화, 집단적 사익화(私益化) 및 이념적 교조화다. 한국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단락 속에서 유독 '80년대'만이 정의를 자임하고 진리를 독점하는 세상이 화근인 것이다. 나치 치하 아우슈비츠의 비극 이후 유대인 문제가 서구사회에서 성역화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80년 광주 이후 우리나라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목하 한국 사회는 80년대가 '장기지속'(long duree) 중이다.

역사학자 브로델에 의하면 장기지속이란 특정한 사건이나 일시적 국면을 초월하는 것으로 역사의 지주(支柱) 혹은 하부구조를 구성한다. 비유컨대 현재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나 여당의 상대적 열세는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큰 그림과 긴 흐름에 비춰볼 때 별로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진보.좌파가 기준이고 반미.자주가 기본이 된 나라에서 대통령이 누구이거나, 집권당의 간판이 아무렇거나 대세에 큰 지장이 있겠는가 말이다.

따라서 이제는 80년대의 장기지속 현상을 국가이익과 사회 발전 차원에서 성찰하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참담한 실패를 통해 그것이 결코 21세기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부응할 수 없는 것임이 입증된 마당에 80년대의 낡은 장막은 이제 당사자 스스로 거두는 게 최소한의 염치이자 도리다. 정치적 수명 연장을 위한 80년대의 인위적 장기지속은 궁극적으로 그들과 국민 모두의 불행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을 과거에 묶으면 과거 또한 그를 묶어 성장도 저해하고 전진도 방해한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