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수읽기와 자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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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최철한 9단 ●. 구리 9단

중국 최강자 구리(古力)는 이세돌과 동갑인 83년생이다. 한국 '4천왕'과의 전적을 보면 이창호 9단과 2승3패, 이세돌 9단과 3승3패, 최철한 9단과 5승3패, 박영훈 9단과 3승2패다. 총계 13승11패. 과연 강적이다. 앞으로도 혈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이 싸움에서 한.중 패권도 판가름날지 모른다. 이창호 9단의 힘이 약화된 뒤 전국시대가 시작됐고 구리는 그중 한 명이다.

장면1(103~105)=흑▲로 건너붙이자 백△로 반발했다. 백△에 최철한 9단은 자존심을 몽땅 걸었다. 그러나 구리도 이 대목에서 물러설 리 만무하다. 103, 105로 차단하여 피를 보자고 한다. 젊은 고수들의 수읽기 대결은 이처럼 극단적인 구석이 있다. 평생 싸울 적수이기에 한 판을 내줄지언정 자존심이나 기세에서 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최철한 9단이 읽어둔 수읽기는 무엇일까. A의 급소를 두어 삶을 모색하는 것은 상대의 기세에 굴복한 소극책으로 흑B를 당하면 중앙이 위험에 빠진다.

장면2(106~118)=106으로부터 외길로 밀어붙여 114로 절단했다. 그 다음 116이 좋은 수순. 백C로 두면 중앙 흑이 바로 잡히기 때문에 흑은 서둘러 117로 지켰고 백은 118에 두어 귀를 깨끗이 잡아버렸다. 중앙 몇 점은 잡혔지만 이 교환은 백의 상당한 이득. 포석 때부터 멋진 감각을 선보이며 구리의 공격을 막아낸 최철한은 이 수읽기 한 판에서 드디어 우위에 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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