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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남자들 '애인 대행' 급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성중앙'애인 대행' 서비스를 아는지. 인기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의 미칠이도 결혼 전 한때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뤄지는 성매매. 누군가의 하룻밤 애인이 돼주는 대가로 받는 금액은 100만원을 넘는다는데….

올봄,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미모의 여대생 김모씨는 '수상한'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이름 모를 발신자 명으로, 전체 메일이란 이름 아래 무작위로 보낸 것이다. 제목은 '고수익 아르바이트생을 찾습니다'. 이른바 스팸메일이지만, 여름 계절 학기 수강료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찾는 것에 고심하던 김씨에겐 반가운 메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클릭한 김씨. 내용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직종, 즉 '역할 대행 도우미' 아르바이트라는 낯선 직종이 포함돼 있었다. 일회적으로 성공한 사업가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서 보조를 한다거나, 필요에 따라 친구가 돼준다는 게 약간 의심쩍긴 했지만 뭔가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의 아르바이트(만남)로 100만~2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김씨에게 거부하기 힘든 '미끼' 같은 것이었다.

순수한 외모를 지닌 스튜어디스 지망생 이모씨 역시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졸업반으로 사회 진출을 앞둔 그녀는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이라는 요즘, 승무원 시험을 단번에 합격하고 싶은 터였다.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 수강료도 만만치 않은 편. 이씨 역시 학원 수강료를 벌기 위해 '역할 도우미 구함' 이메일을 클릭했다.

인터넷 이력서 접수, 애인 대행 도우미는 순수한 외모에 '쌩얼' 사진 필수선발 절차는 간단했다. 인터넷 이력서를 접수 받은 뒤 한 차례 오프라인 면접을 하는 게 전부. 이력서에는 노메이크업의 가장 최근 '쌩얼' 사진과 경력, 나이, 연락처 등 간단한 자기소개만 기입하면 됐다. 이력서를 보내고 며칠 뒤 두 여학생은 회사 담당자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이라는 말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회사 담당자는 편한 자리를 만들었다. 마치 친구를 만나듯, 자연스런 대화를 이어갔다. 당자는 역할 도우미는 전문 지식보다 화술과 매너가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역할 도우미에 대해 궁금해 하자, 일종의 매칭(matching) 시스템이라며, '도우미'가 필요한 사람들의 일정에 맞춰 간단한 대리 업무만 수행하면 된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이 까다롭지도 않고, 특별한 임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말에 짐짓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해 볼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두 여학생. 이때부터 담당자는 한가지 옵션 사항에 대해 노골적으로 의향을 물었다. 역할 도우미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데이트를 요구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판단하되 크게 무리가 없는 이상 데이트를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데이트'에는 은근한 원나잇스탠드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두 여성은 아르바이트 보수가 높은 이유를 알았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쉬운 돈벌이)가 맞아떨어지면서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역할 도우미'아르바이트는 마치 007 작전 같은 느낌을 줬다. 아르바이트가 생기면 담당자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준다. 특별히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은 없다. 평소에 데이트를 나가는 것처럼'예쁜 얼굴, 세련된 차림'으로 외출하면 된다.

다만 회사 담당자는 외출 전 이런 주문을 몇 마디 했다. 아르바이트 지침과 관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분이니 잘 모시고, 개인 프로필에 대해서 물으면 구체적으로 답하지 말고 대충 미소로 얼버무리라고 했다. 특히 강조한 것은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 가능하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역할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담당자는 이 말을 덧붙였다. 남자 회원들은 '닳고 닳은' 파트너는 원치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것.

저녁 식사 후 호텔로 직행, 화끈한 하루 데이트 대가는 100만~200만원. 말만 '역할 도우미'였지, 아르바이트를 나가면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개팅 비슷한 설렘도 있었는데, 상대방들이 워낙 편하게 해주는 타입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역할 도우미는 실제 데이트와도 비슷했다. 저녁 6시 무렵, 약속 장소에서 만나 차를 마시거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 후 바로 호텔행을 원하는 '급한 남성'도 없지 않았으나, 보통은 2차 술자리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 후 호텔로 함께 들어갔다. 만나는 남자들은 대부분 30~40대. 씀씀이도 그렇고, 은근슬쩍 '돈 냄새'를 풍겼다.

'역할 도우미'를 하면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특별한 업무 수행은 없었다. 마치 소개팅을 하듯, 연상의 남자들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고 하룻밤을 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하룻밤에 대한 거부 의사는 밝힐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다음번 아르바이트 자리를 예약하기는 힘들게 된다. 어차피 애인 대행을 시작했으니, 순수한 티를 내면서 애인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되는 것이다. 돈만 놓고 본다면 도우미 여성들은 손해 보는 게 없었다. 공짜 식사에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즐기면 됐던 것. 이들이 아르바이트, 즉 하룻밤 데이트를 해주고 받은 돈은 100만원 선이다.

계절 학기 수강료를 목표로 '쉬운 돈벌이'를 계획했던 여대생 김씨는 역할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계획대로 '딱한번' 했다지만, 결국 경찰의 '애인 대행 성매매' 수사망에 걸리고 말았다.

최근 들어 온라인상에 '역할 도우미' 혹은 '애인 대행' 이란 이름의 신종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여러 개의 역할 도우미 사이트가 버젓이 이름을 드러낸다. 지난 9월 초 서울지방경찰청 여성(?)기동수사대는 모 포털 사이트의 T동호회를 수사해 '역할 도우미'의 숨은 그림자를 잡아냈다. 이 사이트의 역할 도우미 모집에 지원한 여성들 중에는 이들 여대생 외에 미스코리아 대회 입상자, 특급 호텔 직원 등 외모와 경력에서 수준급을 자랑했다.

'역할 도우미'는 도우미라는 건전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불건전한 남녀 간 만남을 주선해 주는 사이트. 당초 T사이트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건전 동호회로 출발했다가, 남자 회원들 간에 '야동' 등 이런저런 밀담이 오가면서 '애인 대행' 사이트로 발전했다고 한다.

남자 회원들은 일반/우수/VIP 회원으로 등급이 나뉘었고, 연 회비 3만원을 내는 VIP 회원들을 상대로 '애인 대행' 서비스가 연결됐다. 이들 VIP 회원은 준비된 여자 회원들의 사진 및 프로필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 자격이 주어진다. '애인 대행'은 먼저 운영자가 VIP 회원에게 무작위로 애인 대행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내고, 이에 응답을 보내온 회원들을 상대로 진행된다. 마음이 동한 회원들에게는 5명 이상 미모의 여성 프로필이 전달되고,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종의 유흥가 은어인 '초이스'가 가능했던 것이다. VIP 회원은 800여 명에 이르렀다.

남성들은 하룻밤을 보낼 때마다 100만~200만원을 지급했다. 액수는 여자 도우미의 미모와 매너 등에 따라 등급이 정해졌다. 도우미 역할에 지원한 여성 지원자는 무려 500명에 달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 회원의 선정 기준. 이곳 도우미들은 한눈에 봐도 미인들인데, 무엇보다 '쌩얼' 미인이란 점이 특이하다. 프로필 사진에도 전혀 조작 없이, 화장기 없는 '쌩얼' 사진을 올렸다. 이는 도우미 선정 기준과 연결되는데, T사이트는 도우미들의 조건으로 가능하면 '닳아 보이지 않는 청순한 여자'를 고집했다. 그래야 더 고급스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시쳇말로 '놀아본' 남성들이 그 반대급부의 여자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을 이용한 차별화 전략이었다. 단속에 걸린 남자 회원 중에는 벤처회사 대표, 증권사 펀드매니저, 의사 등 부유층이 대부분. 돈이 있기에 얼마든지 여자를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 회원은 특별히 '놀아본' 경험이 없거나 드문, 순수 미인을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하룻밤 데이트 대가로 비싼 돈을 지불한 이유다.

여자 도우미들은 남자들의 요구에 끌려가는 대신, 자기들의 활동 스케줄이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본인의 스케줄에 맞췄다. 이에 따라 남자 회원들은 여자 도우미들이 공부에 바쁜 여대생이나, 활동 많은 모델들로 믿게 됐다. 도우미들은 데이트를 나가도 절대 자신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았으며, 접선 연락은 운영자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철저하게 '신비주의'를 지킨 것이다.

일종의 '스폰서' 계약도 진행됐다. 매달 두세 차례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 조건으로 한달에 500만~1000만원을 여성에게 후원(?)하는 계약을 맺은 것. 특이한 점은 남자들은 스폰서 비용으로 보험에 가입하면 된다는 권유를 받았다는 것. 보험 설계사를 준비하던 운영자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큰 액수의 보험 계약이 성사되면 상당한 금액의 계약 수수료가 설계사에게 할당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남자 회원들과 운영자 모두에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경찰 담당자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여자들이 왜 성매매까지 동참케 됐느냐"는 의문에 이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처음에는 전화 문의를 하거나, 친구 제안으로 면접에 응합니다. 운영자들은 처음부터 성매매에 관한 '노골적인' 제안을 하지 않죠. 운영자와의 면접에까지 응한 여자들은 이미 반 정도를 허락하고 온 것인데, 막판에 하룻밤을 잘 경우도 있다고 옵션을 걸면 대부분 응하는 거죠. 한 번 경험이 어렵지, 그 다음에는 계속되는 거고요."

'애인 대행'은 밤이 외로운 늑대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한 단어나 마찬가지다. 몇 시간 애인 역할만 해주면 될 거란 순진한 생각만으로 접근하는 여자들도 드물 터. 그렇게 '쉬운 돈벌이'를 목적으로 성을 주고받는 불건전한 행태는 알음알음 진행 중이다. 인터넷상의 위험한 거래는 모습을 달리할 뿐, 계속 검은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다. <여성중앙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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