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돌려막기 2억 빚진 30세 주부 새마을금고서 어설픈 복면강도 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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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검은 복면을 한 조씨가 새마을금고 안에서 고객을 식칼로 위협하며 돈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上)). 금고 직원이 가스총을 들고 달려들자 조씨가 달아나고 있다(사진 (中)). 조씨가 당황해 문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금고 직원이 조씨를 붙잡았다(사진 (下)).

친정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 때문에 거액의 빚을 진 주부가 궁여지책으로 은행을 털다 붙잡혔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주부 조모(30)씨는 미군 군무원인 남편(35)과 두 딸(1세.4세)을 둔 평범한 주부였다. 빠듯했지만 나름대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조씨에게 불운이 시작된 것은 2002년 친정아버지가 간경화로 입원하면서부터.

남편 몰래 신용카드를 만들어 댄 병원비 1500만원이 화근이 됐다. 31평짜리 빌라를 사면서 대출받은 돈이 5500만원이나 돼 카드 대출금 갚기가 만만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웃에 빌려준 수천만원을 떼이는 일까지 생겼다. 조씨는 결국 사채와 카드 돌려막기로 몇 년을 버텨봤지만 빚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2억원으로 늘어났다.

친정아버지 병원비조로 빌린 원금과 이자 등 4000만원을 갚아야 하는 11월 1일이 하루하루 다가왔지만 더 이상 돈 빌릴 곳도 없었다. 혼자서 끙끙 앓던 조씨는 은행강도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씨는 31일 오전 10시20분쯤 구로구 고척동 새마을금고 분소에 복면을 하고 들어갔다. 전날 사전답사차 금고를 방문해 통장을 개설하면서 청원경찰이 없다는 것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조씨는 문을 열자마자 창구 앞으로 달려가 손님 노모(60.여)씨의 목에 부엌에서 들고 나온 흉기를 들이댔다. 이어 금고 직원 4명에게 "가진 돈 다 내놔"라고 외쳤다. 마침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조씨와 당황한 직원들의 대치상태가 1분여간 이어졌다.

하지만 조씨의 어설픈 행색을 보고 직원들은 곧 자신감을 찾았다. 비상벨을 누른 박모(38) 과장이 가스총을 들고 창구를 뛰어넘어 조씨에게 달려들었다. 조씨는 겁을 먹고 바닥에 칼을 버린 채 달아났다. 그러나 조씨는 당황한 나머지 안에서 당겨야 열리는 현관문을 밀어서 열려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붙잡혔다. 부인이 강도행각을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온 남편은 조씨에게 "왜 나한테 빚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날 조씨에 대해 특수강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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