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 석유와 중동(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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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이런 가설이 있다.
중동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강대국들이 의기투합해야 풀린다. 하지만 현실을 겉보기와는 다르다. 소련은 지금 유엔에서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마지못해 겉으로 하는 짓이고,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석유문제 하나만 놓고 보아도 소련은 세계최대의 석유부존 국가다. 미국의 두배인 6백억배럴 이상을 땅에 묻어놓고 있다. 중동사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석유값은 오른다. 달러 한조각이 아쉬운 소련은 석유값 올라 손해볼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최근 소련의 원유사정을 자세히 보도한 아시안 월 스트리트저널지를 보면 요즘 소련의 산유량은 하루 1천2백만배럴이다. 그중 3분의1을 수출한다. 서방세계로 1백70만배럴,동유럽으로 2백만배럴이 나간다.
그러나 소련의 산유량은 자꾸 줄어만 간다. 95년께면 하루 1천만배럴,2010년엔 9백만배럴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 이유는 석유개발에서도 역시 기술낙후 때문이다.
무작정 석유를 빨아 올리는 바람에 유정이 무너질 정도다. 파이프마저 낡디 낡아 막혀버리는 수도 많다. 시베리아 유정에선 밖으로 새어 나가는 원유만해도 7백만배럴이 넘는다.
소련에서의 석유채굴 비용은 지난 85년이후 3백나 높아졌다. 미국의 석유채굴 기술에 비해 무려 30년이나 뒤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석유를 나르는 트럭이나 굴정장치,저장시설이 태부족이다. 생산성이 낮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방기술자들이면 한 주일에 해치울 수 있는 작업을 두,세주가 지나도 될똥 말똥이다.
석유과소비는 소련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소련 전소방들의 하루 석유소모량은 2천8백만배럴이나 된다. 이것은 전서방국들의 소모량을 능가하는 분량이다. 소련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석유를 쓴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값을 올리는 것인데 사회불안 요인이 될까봐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중동사태로 소련이 득볼 일은 별로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바엔 모처럼의 세계 해소무드라도 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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