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서 빛난 한국인 봉사정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종덕 삼성건설 전무, 정달호 주 이집트대사, 조지 하킴 수단 난민학교 교장(왼쪽부터)이 학교 개조작업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했다.

"내일 등교하는 아이들이 천사가 다녀갔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집트 카이로 외곽 빈민촌인 킬로 아르바아 와 누스에 있는 수단 난민학교의 조지 하킴(46) 교장은 29일(현지시간) 하루종일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망치와 톱질 소리가 계속되더니 폐허와 같았던 학교가 새 건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파란색, 흰색 안전모를 쓴 천사들은 인근 카이로 아메리칸대학(AUC) 캠퍼스 신축현장에서 일하는 삼성건설 소속 근로자 50여 명이었다. 건설현장 책임자 김종덕(58) 전무와 김일중(49)소장 등 한국인 직원 20여 명과 이집트인 근로자 30명은 이날 아침부터 이 학교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이들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일요일에 '학교 바꾸기 작전'을 벌였다. 11개 교실은 새 옷을 입었다. 파란색과 녹색 페인트가 교실 벽에 칠해졌고, 10㎡도 안 되는 작은 교실 안에 놓여있던 책상과 의자도 니스 칠 덕분에 반질반질해졌다. 가장 큰 작업은 교실의 지붕을 바꾸는 일이었다. 양철 조각이 얼기설기 얹어진 지붕을 합판으로 보강했다.

김 전무는 "섭씨 50도가 넘는 날씨에 양철 지붕 밑의 교실은 용광로 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을 지휘하던 김 소장도 "양철지붕 위 아래로 합판을 대고 천장용 선풍기를 달면 무더위는 피할 것 같다"며 웃었다.

하킴 교장은 "개교한 지 6년 만에 처음 접한 따스한 손길"이라며 "내일 등교하는 학생들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단 남부와 서부의 다르푸르 등 오지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확실하게 인식할 것"이라며 김 소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봉사활동 현장에는 정달호 주 이집트 대사가 방문해 어학 및 방송용 CD.카세트 플레이어 한 대를 학교 측에 전달해 박수를 받았다.

수단에서는 20여 년간 계속된 남.북부 간 내전과 최근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인종.종파 간 충돌로 약 200만 명의 난민이 생겼다. 이 중 수십만 명이 이집트에 머물고 있지만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교육시설은 비참할 지경이다. 중.고등학교는 아예 없고 초등학교 과정을 위한 임시학교 13개가 구호단체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삼성건설 직원들이 단장한 이 학교에는 300여 명의 난민 학생이 2부제로 수업을 받는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