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환경이 내 아이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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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된 딸과 7살 아들을 둔 송모(43)씨 부부.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자녀들을 데리고 할인매장을 찾았다. 물건을 고르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달콤한 음료를 한무더기 들고와 쇼핑카트에 집어 넣는다. "유산균 음료이니 그나마 낫지…"라고 위안해보지만 어김없이 저녁식사는 피자로 때워야 한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 그렇고,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부부 역시 적응이 됐다. 또래보다 살찐 남매를 보며 송 씨부부는 그저 유전탓이려니 넘기곤 했다. "유전인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그런 환경이라면 누구나 비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소아비만의 권위자인 인제백병원 강재헌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최근'소리없이 아이를 망치는 질병-소아비만'책을 펴내 비만퇴치에 나선 그에게 비만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아이들을 비만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이 있는 지를 물었다.

◆만병의 근원, 비만
= 비만은 체내에 지방조직이 과다하게 축적돼 있는 상태다. 지방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보니 내분비계 이상이 나타난다. 사춘기가 빨리 온다. 어릴 적 또래보다 클 수는 있지만 나중엔 꾸준하게 천천히 자란 친구들보다 결코 커질 수가 없다.

키 문제만이 아니다. 대중매체 어느 곳을 봐도 비만이 아름다움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비만 아동·청소년은 정신적 장애를 느끼기 시작한다. 또 온갖 합병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지혈증·지방간·고혈압·심장질환·당뇨병 등 성인질환이 일찌감치 찾아온다.

고지혈증은 피 안에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류의 기름기가 떠다니는 것이다. 어쩌다 그 기름기가 혈관내벽에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지면 그게 동맥경화다. 동맥경화가 병적으로 진행돼 30~40대에 이르면 아무리 치료해도 원상복구는 어렵다.

축적된 지방은 정상 간세포를 파괴, 전신 권태와 피로감을 낳고 당뇨병까지 몰고 온다. 여기에 고혈압까지 겹친다고 생각하면 조기비만은 한시도 방치할 일이 아니다. 먹을 거리가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음식이 너무 많은데다 적절한 운동으로 넘친 지방을 털어내기도 쉽지 않다. "환경이 다른데 옛날 생각에 안주한다면 곤란하다"는 게 강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 아이, 비만에서 구할 수 있다
= 비만치료의 기본원칙은 식사·운동과 행동수정이다. 요즘 아이들의 비만은 세끼 식사보다는 주위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햄버거·피자 등 패스트푸드와 고칼로리 과자·음료수로 인한 현상이다. 비만예방과 치료에 우리 음식만큼 좋은게 없다.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은 체중조절에 필수적이다. 아동·청소년의 체중조절에 적합한 공간은 사실 학교다. 비교적 넓은 운동장과 운동시설이 있고, 체육교사가 있으며 교과목까지 배정돼 있다. 아이들의 비만치료에 운동이 특히 좋은 이유는 성인과 달리 신체발육과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식사종류·양에서 적극적인 열량제한이 어렵기 때문이다. 못먹게 할 수 없다면 잘 뛰어놀도록 해야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운동 역시 숙제가 아닌 평생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취미가 돼야 효과가 있다.

행동수정이란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뚱뚱한 아이들의 식사·생활습관과 운동량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고, 제때 식사보다는 군것질에 더 길들여져 있다. 굶었다가 한꺼번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하고, 취미도 움직임이 없이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것들이 대다수다.

강 교수는 "일부 선진국은 소아용 음료의 열량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등 정부가 비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공익적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비만을 유전이나 아이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비만해지기 쉬운'사회적 환경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비만탈출을 도울 수 있는 정부와 사회의 환경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도움말=인제 백병원 02-2270-0114 www.paik.co.kr

프리미엄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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