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의 출현-임영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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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요즘 우리나라 예술계 일각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일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어떠한 것이기에 일부 예술가들이 이처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현대의 예술은 현 사회에 두 가지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에 관련되어 있다.
첫째 현대예술의 습관화된 돌변적인 전환성 뿐 아니라 현 사회의 소비성에 예술이 편승, 동조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예술의 전위성에 관한 논리적 난점 등이 사람들에게 실망과 싫증을 안겨주었고, 둘째 이와 같은 반감이 현대적인 이성에 대한 반박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 및 사상의 현대성이 순수주의 및 그 정예 적인 성격, 그리고 지식의 정당성 등으로 주장되고 있으나 그 한계와 모순에 식상하여 반발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현대 건축의 종말은 1972년 7월15일 오후3시32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시에 가장 최신 이론에 따라 건축했던 단지 건물이 살기에 불편한 짐으로 확인되어 파괴돼 철거된 때부터였다』고 하는 미국 비평가 찰스 젠크스의 지적 같은 것이다.
최신 이론을 동원, 현대 건축의 핵심적인 목표인 기능에 맞추어 건축한 건물이 알고 보니 그 소정의 목적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것이다.
프랑스 등의 예에서 보듯 가장 훌륭한 연주 홀로 알려진 곳이 사실은 버려진 옛 차고를 개조한 것이고 멋진 미술관이 또한 옛 기차역, 또는 도살장을 손본 것이라는 사례 등도 현대 건축의 자체 모순을 입증하는 예라 하겠다.
이렇듯 현대성이 지니고 있는 자가당착의 모순은 건축·철학 분야에서 먼저 부상되어 점차 문학·조형예술·음악 등으로 파급, 이에 대한 회의적인 저항 현상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이다.
한편 문학에 있어서도 현대풍은 작품의 간결함이나 야심적인 면이 작품을 향한 독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즐거움을 주지 않지만 포스트 모던 작품은 반대로 독자들의 만족을 염려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며 배척하지 않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관용성과 비평의 포기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형식을 수용하는 것이며 이러한 절충주의는 오늘의 일반 문화의 기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의 문화에 있어서 모더니즘의 독선·모순·정예성·비타협성 등이 낳은 비민주적인 문화적 성격에 반발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은 모더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확증 적인 반론 등의 전제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서울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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