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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5·31 지방선거 개입 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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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고정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장민호(44)씨가 결성한 '일심회 조직원'이 체포 직전까지 북한에 각종 정보를 제공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기영(41)씨와 이진강(43)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다.

검찰의 관계자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처음엔 이 같은 북한의 대남 공작이 우리 사회에 통하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장씨의)압수품에서 관련 보고서 등 문건이 계속 나오고 있어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정치 현안에 개입 시도했나=수사 당국은 최기영씨가 국내 정치권 동향을 정리해 장씨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수사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장씨가 공당의 사무부총장 자리를 이용해 각종 정치 관련 정보와 각 정파의 인맥 상황 등을 빼냈는지가 수사 포인트 중 하나"라고 전했다. 검찰이 최씨를 상대로 "민노당 간부를 설득해 인물 분석자료를 보내라는 지시를 손정목에게서 받은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 당국은 최씨가 지난해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 처리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을 파악해 손정목을 통해 장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최씨는 장씨를 통해 5.31 지방선거에도 개입하라는 북측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수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민노당이 열린우리당을 밀어줘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또 장씨가 '환경문제를 끌어들여 시민단체를 반미 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라'는 지시를 북한 측에서 받고 환경단체 간부 등을 상대로 포섭작업을 벌였다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이 거론된 환경단체는 북한 핵실험 이후 실제로 반미 활동을 하고 있다.

◆ e-메일 내용이 사건의 열쇠=이들의 혐의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장씨의 비밀 인터넷 e-메일 주소를 확보하면서 가능했다고 한다. 당국은 safeXXX.net, fastXXX.fm, ausXXX.edu 등 3개 계정에 마련된 장씨의 e-메일 주소 6개를 압수해 분석작업을 하고 있다. 장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미국.호주 등지에 마련된 계정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파 통신의 경우 공안 당국의 감청 가능성이 크고, 국내 공작활동이 약화되면서 무인 매설지(드보크)를 이용한 접선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수사 당국의 분석이다.

장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교육받은 통신 방법이 입력된 USB 메모리도 중요한 수사의 근거가 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장씨가 중국에서 만난 북한 기술지도원으로부터 자택이나 사무실을 피해 동네 PC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교신하라는 지령을 받고 이를 실행했다"고 말했다. e-메일 내용과 USB 메모리 분석을 통해 일심회 회원들의 북한 보고 내용을 확인했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지난해 초 장씨는 중국의 둥쉬화위안에서 만난 기술지도원에게서 통신 교육을 다시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북한 공작원은 장씨에게 "월.화요일은 대북 통신을, 금.토요일은 지령을 수신하되 모르스통신을 보조수단으로 삼고 인터넷 통신에 매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 당사자들은 부인=현재 이들의 죄목은 '간첩(국가보안법 42조 목적수행)'이 아닌 '잠입.탈출(6조)' '회합.통신(8조)' 혐의다. 관련 피의자 중 유일하게 혐의를 일부 시인한 사람은 장민호씨뿐이다. 나머지 피의자는 "일심회라는 조직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장씨도 노동당 가입 여부 등 체포 초기에 인정했던 혐의 중 많은 부분을 부인하고 있다고 장씨의 변호인 측은 전했다. 장씨 변호인은 "국정원 측이 미국 시민권자인 장씨에게 '전향하지 않으면 미국으로 추방하겠다. 그러면 테러 용의자로 지목돼 관타나모 수용소로 갈 수 있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일부 사실을 시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혐의 입증에 자신하고 있다. "장씨로부터 입수한 물건 중 북한에 보낸 보고서의 양과 내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김종문.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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