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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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3일 개막된 서울 연극제는 그동안 한국 연극계의 연중 최대 행사로 자리를 굳힐 만큼 성장, 발전해왔으며 그만큼 국민의 관심과 국가의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88년올림픽 축전을 계기로 명칭을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서울 연극제로 변경, 외국 극단의 참가가 이루어지면서 부분적이지만 국제적인 페스티벌의 성격도 갖게 되었다.
금년에는 유고의 국립극단이 연극제에 참가했다.
이 연극제 창설의 근본 취지는 우리의 희곡을 양과 질에서 좀더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아울러 전반적인 연극 수준을 끌어올려 영향력 있는 연극 문화의 조성을 촉진시키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서 문예진흥원은 극작가와 극단에 상당한 지원금을 제공해 왔으며 서울시에서도 이번에 처음으로 3천만원의 보조금을 내놓았다. 13회를 개최하는 동안 국내의 모든 극작가와 서울의 극단들은 이 연극제에 총력을 기울여왔고 그결과 그간의 한국 연극을 대표할만한 새로운 희곡과 공연 작품들이 주로 이 연극제에서 생산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서울 연극제의 성과는 매우 컸다고 생각된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각 지역 연극이 결집되는 전국 연극제의 참가작이 대부분 서울 연극제에서 공연된 작품들임에서도 이 연극제의 비중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 절대적 평가는 아니라는데 이 연극제의 문제가 있다.
설령 한국 연극을 대표할만한 작품이라 해도 한국 연극 자체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질적 수준 또한 그 정도이거나 그것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그래서 이미 80년대에 연극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가장 재미없는 연극이 연극제의 작품」이라는 혹평까지 듣게 되었다.
무기력과 단조로움의 반복에 식상한 관객과 비평가의 불만이었고 하루빨리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라는 질타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극제는 주무부처를 진흥원에서 연극협회로 이관했고 올해는 주관을 민간단체에 맡기기로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작년과 금년에는 희곡심사만으로 참가작을 결정하는 외에 이미 공연된 작품에도 참가 자격을 부여하였으며 시상제도에도 작품상을 제외하고 개인상만 시상키로 했다. 경연제를 지양하자는 의도다.
그렇다고 이번 연극 제작품의 질이 월등하게 높아지고 관객의 호응이 커질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방법의 수정만으로 목적이 달성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연극제에 대한 연극인의 열망과 전문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이다. 최상의 연극을 만들겠다는 연극인의 열의, 그에 알맞는 창의력, 그리고 훌륭한 연극에 성원을 보낼 줄 아는 관객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번 이 난에서 금년 상반기 연극은 번역극의 압승이었다고 판정했다. 이처럼 기울어진 균형을 어느 정도 회복할 기회가 이번 가을의 연극제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의 정서와 얼이 감동적으로 표현된 우리 연극이 융성할 때 비로소 우리의 연극 문화는 빛나게 개화한다. 번역극은 그 문화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데 이바지 할 뿐이다. <연극 평론가·한림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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