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만 짓다간 집값 잡기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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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7일 건설교통부가 검단을 포함한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것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검단 신도시를 새로 만들고, 파주 신도시를 기존의 1.2지구와 함께 분당 규모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건교부 강팔문 주거복지본부장은 "내년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추가로 발표하는 것을 비롯해 신도시 건설 계획이 더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부동산 세제와 같은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뛰는 집값을 잡지 못한다고 주장해 온 전문가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신도시가 정작 수요자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형태로 지어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공급 과잉만 유발하고 집값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공급 확대로 돌아선 주택정책=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로 2003년 5.23 정책을 비록해 부동산 규제 정책을 50건 이상 내놨다. 모두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이처럼 많은 정책이 나오게 된 것은 정부 정책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무부처인 건교부는 공급 정책을 꺼내드는 데 계속 소극적이었다. 청와대와 여당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추병직 장관이 지난해 6월 신도시 계획을 내놨다가 나흘 만에 철회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제시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 상황에서 섣부른 공급정책은 오히려 시장 불안만 가져올 것이라는 게 청와대.여당의 시각이다.

그러다 공급정책이 가시화된 것은 정부 스스로 부동산 정책의 완결판이라고 자화자찬한 지난해의 8.31 정책이었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연간 3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고, 이를 위해 수도권에만 신규 택지를 1500만 평 확보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송파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깜짝 발표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공급 정책이 그 이상 구체화되진 못했다. 택지지구 지정을 통해 소규모로 주택을 찔끔찔끔 공급해 봤자 끓어오르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신도시 건설을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8.31 정책이 나온 지 1년도 더 된 시점에서 추 장관이 '신도시 건설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수요 억제 대책의 한계를 자인한다는 의미다.

RE멤버스 고종완 소장은 "신도시 건설은 정부의 규제 정책이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건교부는 한 발 더 앞서갔다. 강팔문 본부장은 "8.31 정책에서 밝힌 1500만 평보다 택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택보급률보다는 1000명당 주택 수를 공급의 기준으로 삼겠다고도 했다. 주택보급률은 선진국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지만 1인당 주택 수는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여전히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 외곽에만 짓다간 헛발질=정부가 인천 검단을 신도시로 정한 것은 개발이 쉽기 때문이다. 이미 인천시가 대체적인 개발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건교부와의 협의가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이 지역은 오히려 공급 과잉 우려가 불거지고 있어 미분양을 우려해야 할 판이다. 검단 신도시 인근에는 ▶김포 신도시(358만 평, 5만3000여 가구) ▶영종지구(577만 평, 5만 가구)와 청라지구(538만 평, 3만1000가구)가 개발 중이다.

검단 신도시의 입주가 시작되는 2013년까지 연평균 2만7000여 가구가 공급되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인천시 전체 주택 공급물량(1만7500여 가구)보다 1만 가구나 많다. 따라서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하는 수요가 많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건교부 실무자조차도 "서울 강남권 등의 수요를 끌어들이기엔 미흡하다"고 말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박용석 박사는 "최소한 서울 도심에서 출퇴근하는데 1시간이 넘지 않는 곳에 신도시를 지어야 서울 등의 집값 안정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수도권에서 신규 택지의 확보가 어려운 만큼 용적률 등 건축규제를 완화해 분양가도 내리고, 공급 가구 수도 늘리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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