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추병직 장관 거취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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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2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 정책조정회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관계 부처와의 사전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23일 신도시 건설 계획을 불쑥 털어놓은 '돌발 발언' 때문이다.

특히 추 장관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청와대마저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는 27일에도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일일상황 점검회의에서 추 장관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영 대변인은 "발언의 경위 등을 둘러싼 청와대 정책실 차원의 점검은 일단 끝났다"며 "하지만 추 장관 발언이 불어 온 후유증 등과 관련해서는 정책실이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내부점검 결과 추 장관이 발표 과정에서 관계 부처 간 협의나 당정 협조가 없었다는 부분을 최종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추 장관이 발표 하루 전인 22일 일요일인데도 출근해 집값 이상 폭등 등을 체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부동산 대책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집값 폭등을 우려한 결과 협의 과정없이 해당 발언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추 장관의 발언이 시장에 혼란을 주긴 했지만 정책 의도를 고려하면 나름대로 정상을 참작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래선지 청와대는 가급적 인책 문제로까지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하다. 윤 대변인은 "(추 장관과 관련해)아직까지 청와대 내에서 인책 얘기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점 거세지고 있는 추 장관 사퇴 요구와 관련한 여론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등 긴장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특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에서 인책 요구가 쏟아지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경실련은 추 장관에게 더 이상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을 맡길 수 없다면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경실련이 추 장관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노당은 추 장관을 '투기 세력 X맨' '오버 맨' 등으로 부르면서 집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한명숙 총리도 신도시 추가 건설계획을 관계 부처와 사전 조율없이, 청와대와 총리실에도 충분히 보고하지 않고 발표해 파문을 일으킨 추 장관을 26일 강하게 질책했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한 총리는 특히 이번 사안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교부는 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건교부 강팔문 주거복지본부장은 27일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장관의 신도시 언급은 주택정책의 주무 장관으로서 정부가 8.31 대책의 일환인 공급확대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등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과 관련, 다른 관계자는 "신도시 정책은 건교부가 주무 부처로, 대략적인 계획과 일정을 설명하는 것은 장관의 재량권에 속한다"며 "재경부 등 관계 부처와는 협의가 끝나지 않았을 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고 추 장관을 두둔했다.

그러나 "8.31 대책 발표 때 장관직을 걸고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했는데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책임론은 여전히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추 장관도 이번 발언이 몰고 온 파장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이다.

그는 이날 경제 관련 장관들이 참석한 경제정책조정회에서 "신도시 발표로 물의를 빚어 부총리와 관계 장관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집값 불안 때문에 급한 마음에 정부의 공급정책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 기자실에 들렀다가 신도시 계획을 언급한 것"이라며 "결국 이런 설명이 특정지역의 집값 불안으로 이어진 점은 유감이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투기 국면이 진정될지 여부를 봐야 한다"고 말해 당분간 여론의 동향이 추 장관 거취를 좌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비록 추 장관이 청와대와 코드를 맞춰 주택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신도시 발표가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지속된다면 경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승희.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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