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바다 어우러져 문향 전통 이어간다|강릉·속초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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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섯 폭 비단 치마 노을에 끌며/신선을 물러대며 난초 밭 올라/잠깐의 생황소리 꽃 속에 다해/인간의 일만년이 덧없이 흘러.』
우리 여류 문학의 최고봉 허난설헌이 신선 세계에서 놀아난 황홀한 꿈을 그린 『유선시』 87수 중 마지막 수다.
대관령에 오르면 그러나 선경이 어찌 신선 세계만의 것이랴. 발아래 펼쳐진 운해와 어슴푸레한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분별하고 있노라면 세상사는 이내 우리 것이 아님을. 그렇게 대관령을 넘으면 강릉, 그리고 동해안을 따라 38선을 넘어가는 남한 최북단 항구 도시 속초·설악 등 명산과 탁 트인 바다가 있는 이곳은 예부터 문향으로 소문난 강릉을 중심으로 문학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예부터 학문을 숭상하던 강릉은 1279년 중건된 문묘대성전이란 지방 최대 규모의 향교를 위시해 여러 서원과 풍광이 뛰어난 경포 주변의 수많은 누정을 통해 대지 이율곡과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비롯, 당대를 대표할만한 학자와 문인을 낳았다. 특히 5부 자녀가 모두 일가를 이루어 일세에 문명을 날린 허초당과 그의 4남매 성·봉·균·난설헌 등 「허씨 오문장」은 강릉 문단의 자랑이다.
이중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 난설헌 (1563∼1589)은 격조 높은 애정시와 현실의식 시로 중국·일본 등 동양 3국에 문명을 날린 우리 나라 대표적 여류 시인으로 강릉에서는 현재 그의 시비와 기념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같은 문향으로서 강릉의 전통은 일제시대 시인 김동명과 박기원을 낳았으며 현역 문인 30여명에게로 이어진다.
해방 후 강릉 학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1951년 간행된 시동인지 『경포도』였다. 황금찬 최인희 이인수 김유진 함혜련씨 등이 주축이 된 청포도 동인은 동인지 발간 및 시 낭송회 등을 통해 강릉 지방 학생층에 문학에 대한 열기를 심으며 해방 후 강릉 문학의 산모역을 해냈다.
이후 청포도 동인회의 지도 교사 역할을 맡던 황금찬 최인희씨가 강릉을 떠나자 1959년 윤명 이인수 김운학 원영동 이상건 홍덕유 신봉승 이영섭 홍종석 최명길 박명사 이윤희씨 등 20여명의 문학 청년들이 「관동 문학회」를 결성, 강릉 문단의 구심점이 됐다.
현재 강릉을 중심으로 삼척·동해시 등 관동 지방을 망라, 전 장르에 걸쳐 50명에 이르는 회원을 갖고 있는 관동 문학회는 앞으로 문학상 및 신인 추천 제도를 제정, 자체적으로 신인을 배출할 예정이다.
1960년 김원기 엄기원 박영규 박은수 박용열 엄성기씨를 주축으로 탄생된 아동 문학 동인「조약돌」도 동인지 발간과 합평회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며 동인들을 속속 중앙 아동 문단에 내놓아 한국 아동 문학의 길을 열고 있다.
한편 청포도 동인회 이후 이렇다할 활동이 없던 시폭에서는 김유진 박화 엄창섭 구영주 조영수씨 등 23명이 1980년 「해안 동인회」를 창립했다.
처음에 시동인 성격을 띠다 다음해 이승환 (소설) 김정개 (희곡) 박호영 (평론) 강돈원 (수필)씨 등이 대거 입회, 종합 문학 동인회로 커졌으나 현재는 16명 회원으로 시동인 성격을 띠며 동인지 『해안』을 퍼내고 있다.
한편 곽영기 김완성 김좌기 이훈 구영주 김남구씨 등 강릉 시조 시인들이 중심이 돼 84년 결성된 「강원 시조 문학회」는 매월 합평회를 열며 동인지를 4집까지 냈고, 이제 회원 25명을 가진 강원 시조단의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이밖에 박명자 이영춘 이구재 이충희 구영주씨 등이 주축이 돼 83년 결성된 여류시 동인 「산까치 동인회」, 같은해 결성돼 매월 시 낭송회를 펼치고 있는 「바다 시 낭송회」, 88년 전체 장르를 포괄, 10여명으로 결성된 「오죽 문학회」 등이 현재 활발한 활동을 떨치고 있다.
전후 수복 지구에 급조된 최북단 도시 속초. 때문에 문학 전통이 있을 수 없는 이 도시에서 1969년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속초도 문학의 중심이 될 수 있다』며 윤홍열 강호인 박명자 이성선 최명길씨 등이 주축이 돼 「설악 문우회」를 창립, 매년 동인지 『갈뫼』를 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전 장르에 걸쳐 동인은 15명이며 대부분 중앙문단에 데뷔했다.
특히 이성선 최명길 이상국 고형열씨 주축으로 81년부터 시작된 「물소리 시 낭송」은 지금까지 70회를 개최, 지방 최장수 시 낭송회로 기록된다. 88년 이상국 박명자 김춘만씨가 시작한 「시 마당 낭송회」도 격월로 낭송회를 개최하며 속초 시민들의 문학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금강산 발치의 고성에서드 66년 최명길 황기원씨 주축으로 「금강 문학회」가 결성됐으나 동인지 5회를 내고 해체된 뒤로 80년 고성고 출신 주측으로 「고우회」를 결성, 계절 따라 시 낭송회·시화전 등을 개최하고 있다.
강릉·속초 지방 문학에는 산의 높은 정신과 바다의 광활함과 깊음이 묻어난다는게 일반적 평이다. 또 선배들의 전통에 대한 엄격성과 태백산맥으로 중앙의 각박한 현실과 막힌 것이 현실감을 상실한 교과서적인 순수문학만 낳고 있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강릉=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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