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 중동 재채기에 독감 걸릴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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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한 유가상승으로 아시아지역의 경제는 지난 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이후 또 한번의 시련을 맞고 있다.
한국을 비롯, 일본·필리핀·인도 등 아시아권의 석유 수입 국들은 유가인상이 제품 생산비용 상승요인으로 작용, 소위 비용상승(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게다가 중동사태의 장기화로 유가인상이 계속되면 이 지역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아시아경제권의 어려움이 가중될 위험도 있다. 이미 성장둔화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경우 ,아시아 산 제품에 대한 수입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아시아 경제권은 수출부진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유가인상이 아시아경제권에 미칠 파장은 지난 70년대 1, 2차 석유 파동 때만큼 심각하지는 않으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간 아시아국가들의 석유수입비중이 줄곧 줄어온 데다 대미수출의존도도 내수시장 확대·시장 다변화·역내투자 및 교역증대 등의 요인으로 점차 감소함에 따라 유가인상에 대한 경제구조의 취약성이 지난번 석유파동 때보다 양호해졌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우선 국내 에너지수요의 절반이상을 수입석유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 겨우 70일분의 원유 비축 분을 갖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늘어나는 에너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원유수입을 20%늘렸을 뿐 아니라 가정용 난방·취사에너지도 주탄종유에서 그 반대로 전환시킴에 따라 석유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의문시되는 상태다.
특히 중동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이라크·쿠웨이트의 17개 건설사업(이라크 13, 쿠웨이트 4)에서 기대되는 25억1천만달러의 건설수입이 불투명해진다는 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1백42일분(국가 비축 54일분, 민간 88일분)의 석유를 비축, 1·2차 석유파동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여유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쿠웨이트로부터의 석유수입이 1년간 전면 중단되더라도 40일분의 비축량을 풀면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세계최대의 전력회사인 일본전기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이전에 이미 베트남·호주·앙골라 등에서 원유를 시험 도입하는 등 페르시아만 원유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대응대세 준비와 함께 유가상승이 자국경제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향후 추이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노무라(야촌) 종합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 당 5달러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 0.1%상승 ▲무역흑자 1백20억∼1백30억 달러 감소 ▲경제성장률이 첫해 0.03% 저하, 둘째 해는 0.13%가 줄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의 경우는 이번 유가상승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사태 발발이전에도 필리핀의 경제성장은 지난해 5.6%에서 올해는 4%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전체석유 수요량의 27%를 이라크·쿠웨이트로부터 수입하는 필리핀으로서는 서방의 대 이라크원유금수조치에 따른 석유공급상의 애로 및 유가상승과 함께 지난달의 강진이 가져온 경제적 후유증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이 나라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온 인도도 유가상승에 따라 두 자리 수의 인플레가 예상되는 가운데 석유소비를 줄이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편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3대 석유수출국들은 단기적으로 유가상승이 가져올 수입증대를 맛볼 수 있어 다른 원유 수입 국들보다는 한결 유리한 형편이다.
하지만 유가상승이 장기화되면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로부터의 공산품 수입수요가 크게 줄 수도 있어 수입증대의 일정부분이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리펑(이붕) 총리는 지난주 『국내수요 증가 때문에 수출 가능한 석유 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유가인상에 따른 장기적 실익이 크지 않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그간의 유가하락으로 원유생산량이 하루 1백28만 배럴까지 떨어졌으나 올 연말까지는 1백37만 배럴 수준으로 회복시킬 계획이다. 아시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로서는 장기적으로 보아 선진국으로부터의 공산품 수요가 크게 줄지 않는다면 이번 유가인상으로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많은 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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