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지식 아닌 지혜를 얻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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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일본·소련 및 동구·아프리카·호주 등지에 한국 불교를 알린 세계적인 선사 숭산 스님이 귀국했다. 숭산 스님은 20, 21일 이틀간 충남 수덕사에서 열리는 「세계일화기원대법회」를 이끌고 22일 롯데호텔에서 「세계일화국제세미나」를 연다. 조계사를 찾은 스님을 만났다.
-「세계일화기원대법회」는 어떤 뜻으로 열리는 것입니까.
▲만공대 선사께서 수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꽃 한 송이를 들어 먹에 듬뿍 찍어서 「세계일화」라고 쓰셨습니다.
대선사가 보여준 것은 너와 나, 해와 달, 하늘과 땅, 공기와 물이 둘이 아니며 같은 뿌리, 같은 근원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지요.
오늘날 온 세계를 둘러보면 어디를 막론하고 인간들은 공포·분노·불평 등의 괴로움을 겪고 있고 땅과 바다와 하늘, 동·식물들까지 모두 「평화를 달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인간간의 관계도 그렇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그렇고 모두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조화를 이루어나가야 평화가 온다는 뜻에서 「세계일화기원대법회」를 올리기로 했어요.
-스님은 어떤 선 맥을 이었습니까.
▲만공을 이은 고봉스님이 스승이지요.
-미국에 한국 선을 알리고 그 씨앗이 널리 퍼져 세계 34개국에 약 5만 명의 제자를 두게된 것으로 아는데요.
▲72년 뉴욕과 보스턴 중간지점인 프라브덴스에 재미 홍법원을 열었습니다.
제자 중에 하버드·예일·보스턴 대학생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유럽·동구유학생들도 있어 이들이 귀국하여 선원을 개설했습니다. 나도 세계를 순방하며 선을 가르쳤지요.
-한국 선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요인은.
▲중국 선의 맥은 끊겼고, 일본 선은 사무라이 식으로 엄격한 참선을 강요하여 힘겹고, 티베트 선은 어렵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나는 생활 선을 이야기했습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 모든 것이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생활 속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이라고 말했지요.
-선이라면 역시 화두를 들고 명상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밖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나 마음속의 진리는 언제나 하나지요. 선을 통해 지식이 아닌 지혜를 얻고 바깥 것과 옳은 관계·옳은 위치·옳은 수용을 해낼 수 있는 부동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동심을 가지려면 지식·논리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본질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그 본질을 알면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흐르는 것이 자명해지지요.
나는 선을 하려는 사람들을 의심덩어리로 만들도록 유도하지요.
-어떻게 선에 빠지도록 합니까.
▲예를 들면 여기에 컵이 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름·형태 등을 여러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는 다만 컵을 들어 물을 마시지요. 외면이 아닌 내면, 지식이 아닌 지혜로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뜻이지요.
-미국이나 서양사람들이 잘 이해했습니까.
▲그들은 과학과 논리의 한계를 알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스님을 몇 명이나 배출했습니까.
▲하버드출신 데이비드 거버가 무상스님, 예일 출신 에릭이 해량 스님, 보스턴 대의 저쇼우아가 무심 스님이란 이름으로 출가하는 등 23명이 조계종스님이 되었습니다.
또 재가법사도 많이 배출했는데 그들이 세계각지에서 포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러 곳과 폴란드, 파리·시드니 등에 홍법원이 설치되었고 소련에도 3개소의 분소가 있습니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었는지요.
▲선은 원래 불립문자라 말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적인 몇 마디면 족하지요. 내 영어를 제자들은 「김치영어」라고 하는데 잘 이해합니다.
숭산 스님은 『오직 모를 뿐』 『선의 나침반』 『허공의 뼈』등 저술을 냈고 제자들이 『부처님께 재를 털면』이란 제목으로 그의 선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숭산 스님은 한국 선을 세계에 알린 선사로, 또 그를 통해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 포교개척자로 우리 불교에서 뚜렷한 위상을 갖고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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