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나이듦의 美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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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22일 오후 10시30분쯤, 긴 시간 황석영씨와 얘기를 나누던 이문열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악문원(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문열씨의 문학 사숙) 1기 숙생이 미국에 가 살다 애를 낳고 왔는데 당시 같이 글공부 하던 1~2기 숙생 다섯명이 모여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차타는 곳까지 동행하는 길에서 그의 걸음이 약간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급하게 들이킨 술 때문인 것 같았다. "누구를 기다리고 또 찾아 오가는 것은 항상 좋은 거다. 오늘 정말 좋은 자리였다." 그와 작별을 하며 돌아서자니 방금 전의 황석영씨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올 환갑인데도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와 한 시간만 넘으면 불편하다. 그런 내색에 아들 내외는 항상 서운해한다."

이토록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 황석영과 이문열-. 그러니 세상이 갈라세우는 대로 매번 불화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날 황석영씨는 "우리는 화해할 게 없다. 다시는 싸움의 일선에 나서지 말자"며 웃었다. 그는 또 "다섯살 아래 이문열 같은 작가가 없었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싶다. 6.25 때 길바닥에서 잃어버린 동생 같다"고 했다.

이문열씨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황선배는 내 문학에 많은 지도와 도움을 줬다. 만일 나와 어떤 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뿐 아니라 떠밀려 그렇게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에 황석영씨는 "이제 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것, 요즘의 자유스러움이 좋다"고 했고, 이문열씨는 "자유로워지는 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가 된다. 그런데 나는 갈수록 묶임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결코 가식이 아닌 듯한 두 사람의 친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두 사람이 대화에 빠져들면서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다 영 엉뚱한 여성학자의 책 제목에 가 닿았다. 인기가수 이적(패닉 멤버)의 엄마로 유명세를 치른 박혜란씨의 '나이듦에 대하여'-. 책에 이런 대목이 있었던 것 같다. "젊은 날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산다. 하지만 나이가 드는 것도 나쁘진 않다. 주변인으로 물러서서 세상을 보는 재미와 여유가 감미롭기 때문이다."

나이듦-. 2003년 가을, 어렵게 만난 두 사람에게 묻어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문열씨는 "시의성이 강한 이슈에 자꾸 간섭하다가는 작가가 상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도 "그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수도 없다. 학생 시절에는 긴가민가 했는데 이제는 믿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황석영씨는 "노르웨이의 한 원로 작가로부터 '작품이 좋다. 누구한테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 독창적인 경험의 소산'이라고 했더니 옆의 젊은 작가들이 '너, 노인네 놀렸어'하더라. 그래서 '나도 노인이다'고 대꾸했다"며 웃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이 시작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걱정이 없을 정도로 꿋꿋하고 치열하게 사는 두 사람이다. 황석영씨는 분단의 비극을 몸으로 극복하기 위해 1989년 3월 북한으로 달려간 죄로 5년 가깝게 옥고를 치렀다. 이문열씨는 '홍위병 발언'으로 2001년 11월 부악문원 앞에서 '책 장례식'까지 당했다.

두 사람의 그날 대화는 '냉정과 열정 사이'였다. 우리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며 열정으로 희망을 말했다는 의미다. 황석영씨는 한참 뒤 자리를 파하며 이렇게 혼잣말을 흘렸다. "오늘 이문열과 대하소설 한 편을 쓴 것 같다. 이런 광장이 필요해." 나이듦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허의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