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분열노린 전략/후세인 조건부 철군제의 저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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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합병」명분 확대ㆍ다국적군 균열 속셈도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주둔 이라크군 철수의 조건으로 내건 세가지 요구사항은 철군의사를 반영하기 보다는 아랍권의 분열을 노린 고단수의 외교적ㆍ정치적 술수로 분석되고 있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침공 11일만에 바그다드 라디오 및 TV방송을 통해 ▲사우디내에서의 미군철수 및 아랍군으로의 교체 ▲대이라크 경제제재 해제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의 철수 등 3개항을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와 연계시켜 처리하자고 제의했다.
후세인의 이같은 제안은 미국을 주축으로한 다국적군의 대이라크 포위가 가중되고 있는 현재 아랍연맹 12개국이 대사우디 지원을 결정,이미 이집트ㆍ시리아ㆍ모로코가 파병에 나서고 있는데 대한 당혹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의 아랍세계가 전통적으로 대미 반감을 갖고 있다는 아랍역사와 관련,아랍권의 대이라크 묵시적 동의내지 대미 방관자세를 기대했었으나 아랍권의 대규모 반이라크 움직임에 직면,이의 타결책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이번 제안을 통해 이라크의 쿠웨이트합병 명분확보 및 아랍권분열을 통해 다국적군의 이라크포위에 균열을 만들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라크가 첫번째 조건으로 제시한 페르시아만 지역내 미군 및 서방군사력의 철수는 이시점에서 미국등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미국은 사우디의 안전은 물론 이번 기회를 통해 확보한 페르시아만 일대,특히 사우디아로의 군사력 진출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특히 후세인이 사우디주둔 미군을 아랍군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한 것은 현재의 대결국면을 아랍권내부의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외세」에 대해 전통적으로 배타심이 강한 아랍세계의 본능을 반미 분위기로 전환시키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후세인이 이 전쟁을 「성전」이라고 규정하면서 회교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무덤과 성도 메카의 수호 등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라크가 느닷없이 이스라엘의 점령지철수를 요구하는 것 역시 아랍권의 대이라크제재 전열을 흐트리려는 전략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라크의 입장에서 이스라엘과의 갈등증폭은 현재 자신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아랍권의 적의를 이스라엘에 떠넘길 수 있는 고육지책이 될 수 있다.
예상대로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이라크의 이같은 제의를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권의 경우 후세인의 속셈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일거에 무시해버리기 어려운 명분상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사우디나 이집트 등의 경우 이번 사태에 미국에 적극 동조함으로써 앞으로 아랍권내에서 제기될지 모를 「배반자」라는 지적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만큼 어떤 형태로든 협상의 노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후세인의 이번 조건제시는 당장에는 실현이 어려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긴 하나 아랍권이 이같은 제의를 고려에 넣고 후세인과 대화의 기회를 모색한다면 후세인의 목적은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및 다국적군의 결연한 대이라크 제재결의에 비춰볼때 이번 후세인의 제안은 그 성과가 없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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