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독특한 재미 '1인칭 다큐' 내가 찍고 내가 말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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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학교'는 일본 최북단 지역인 홋카이도의 조선학교, 그중에도 고3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춰 1년간의 학교생활을 화면에 담은 작품이다. 최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최우수다큐멘터리에 주는 운파상을 받았다. 조총련계 학교라는 점에서 자칫 이념적 잣대로 예단하기 쉬운 소재지만, 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간 카메라는 이 학교의 공동체적 분위기를 감동적으로 포착한다. 일본에 머문 채 해방을 맞은 교포들이 힘을 모아 세운 이 학교는 지금도 일본사회의 섬처럼 고립된 형편에서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고 지켜간다. 헌신적인 교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친화력, 학교 행사가 고스란히 교포들의 잔치가 되는 공동체의 분위기는 흡사 이상적인 대안학교를 보는 듯하다.

물론 외부환경은 좋지 않다. 일본 내에서 정식으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형편이라 학교대항 운동경기 출전 때도 불이익을 받곤 한다. 졸업반이 매년 북한으로 떠나는 수학여행 때는 일본 내 극우파의 협박과 시위에 긴장감이 흐른다.

내적인 문제도 있다. 남학생들과 달리 추운 겨울에도 치마 저고리를 교복으로 입어야 하는 것은 여학생들의 불만이다. 이들이 쓰는 우리말이 현재의 한국어와도, 북한말과도 조금씩 다른 '우리말'인 것 역시 고민이다. 직접적 교류가 없는 한국이지만, 표준어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교사들이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김명준 감독은 1년 남짓한 촬영기간에 학교에서 숙식을 함께한 것을 포함, 거의 3년여에 걸쳐 이 학교와 교류하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간간이 학생들이 카메라를 향해 '명준형님''명준감독'을 부르는 장면에서 감독은 단역급 출연자가 되고, 영화 전체의 내레이션은 그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이들을 지켜보는 감독의 관찰자적 시선을 감추지 않는 방식이다. 자연히 관객은 화면 속에서 등장인물 외에 감독이라는 또 다른 인간을 느낄 수 있다.

김 감독은 "촬영하면서 나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픈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카메라를 든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내가 느낀 것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직접 내레이션을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다큐는 객관적이라는 통념에 대해 "촬영한 분량을 적절히 편집하는 과정은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1인칭 시점의 다큐에 대해 부산영화제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최근 한국 다큐의 새로운 경향"이라며 "관객들에게 만든 이의 진솔한 시점을 전달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지적한다. 2004년 3만 5000명이 넘는 관객으로 국내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을 기록한 김동원 감독의 '송환', 최근 2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화제를 모은 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가 이런 예다.

최하동하 감독의 '택시 블루스'는 1인칭 시점의 관찰은 물론 그 이상의 실험까지 두드러진다.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을 시작한 감독은 날마다 만나는 손님들의 모습에서 영화화에 착안했다고 한다. 택시 내부에 여러 각도로 설치한 카메라에 잡힌 손님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요지경. 감독의 내레이션을 곁들여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던 카메라는 점차 택시기사로서 감독 자신의 피로한 일상을 함께 담아낸다. 놀랍게도 손님들의 모습 중에는 실제상황이 아닌 것도 있다. 초상권 사용에 대한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 단역배우들을 통해 재연했다. 다큐의 본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인 셈이다.

인디다큐페스티벌(www.sidof.org)에서는 '우리학교'를 개막작으로, 국내외 다큐 27편이 소개된다. 다음달 2일까지. 02-362-3163.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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