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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여행 이래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의 북방정책이 진척됨에 따라 공산권국가들을 찾는 우리 여행자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소련의 교포밀집지역은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가 되고 있다.
이들 여행자들이 만나는 동포들은 거의가 한말,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나간 사람들과 그들의 2세 내지 3세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방문객은 다시 나라를 찾고 국력을 키운 조국에서 온 동포로서 과거 그들이 타국에서 느꼈을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자부심을 확인해주는 대상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방문객들이 취할 태도는 손님으로서의 기본 예의를 넘어서 그런 애틋한 기대에 부합되는 의연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와는 정반대 되는 창피스러운 것이다. 물론 그 수는 소수이겠지만 듣기만 해도 낯뜨거워지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불어나게 될 공산권 여행객들은 스스로 이런 행태를 삼가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정부에서도 사전교육등을 통해 이를 시정하는 노력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남자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고 부녀관광객 중에는 밤늦도록 술에 취해 호텔에서 고성방가해 다른 투숙객들의 안면을 방해한 예가 있으며 식당ㆍ호텔 등의 종업원들에게 갖은 거만을 떨며 온갖 잔심부름을 시켜놓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기가 예사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작태는 일부 여행객들이 동포들에게 무엇을 기증하겠다,어떤 사업을 같이하겠다고 호기롭게 약속해놓고 귀국한 후에는 입을 싹 씻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고국이 올림픽도 치렀을 만큼 발전해 있는 사실에 뿌듯한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성의껏 모국 여행객들을 접대하는 교민들은 이같은 약속을 그대로 믿고 고국의 좋은 소식만 학수고대한다는 딱한 사연도 적지않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들보다 좀더 잘 산다고 우쭐대면서 순박한 그들을 얕잡아 보고 못된 서울의 퇴폐문화나 전파해 가라오케까지 연길에 등장하게끔 하면서 사기성 공수표까지 펑펑 남발해서야 되겠는가.
중국동포들이 누구인가.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피해 먹고 살기 위해,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남부여대해 중국으로 떠나갔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로서 우리 민족정서와 풍습을 가장 원형대로 간직한 순박한 동포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동포들에게 추악한 벼락부자의 모습으로 모국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이른바 사회지도층들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우리 모두 맹성해야겠다.
이런 작태를 보고 『고국 동포들은 다 그렇게 사느냐』는 동포들의 질책이 있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된다.
정부는 철저한 여행자 교육방안을 개발,실시해서 이런 비뚤어진 행태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될 것이다.
오는 9월의 아시안게임에 만도 6천명씩의 관광객이 몰려가 또 무슨 난장판을 벌일지가 벌써부터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정부는 물론,여행자들 스스로도 교민들에게 민족동질성을 해치는 짓을 못하고,안하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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