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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펴낸 김용준 교수|" 과학·기술 좀더 대중과 가까워 져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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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용준 교수 (63·고려대·화공학)는 전공이란 말에 부여하는 우리의 좁은 통념에 순종하자면 사방이 막힌 실험실속에나 갇혀있어야 할 사람이다. 거기서 양손에 비커와 플라스크를 쥐고 각각의 내용물을 덜고 보태는 한없는 조합 행위로서의 저울질을 계속하면서 「객관화된 과학적 진리」로 이름 붙여진 알갱이를 탐색하는 일이 말하자면 그의 본분일 터다.
스스로 그럴듯한 성과를 건졌다싶은 경우에는 이른바 과학 지식의 과점자 몇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는 암호화한 수식과 도표로 주섬주섬 엮어 전공 논문 한편을 발표하면 그만이다. 그는 유기합성, 그중에서도 농약·임상 약품 따위의 제조와 결정적 연관을 갖는 탄소·인(CP) 화합물 전공의 화공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김 교수가 실험 실속에 편안히 붙박혀 있기를 마다한 채 특유의 과학관에 바탕한 문명비평의 필봉을 들고 북적거리는 저자거리의 한복판에 섰다.
그가 그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들을 붙잡고 과학을 매개로 하는 철학적 세계관을 설법하기는 7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일이다.
고도에 비길만큼 외떨어져 과학이 새로이 성역화의 길로 치닫고, 과학 문맹이라 할 대중은 대중들대로 과학에의 무관심을 넘어 그것을 증오하게까지 된 세태가 안쓰러워서였다. 그는 대중들이 과학을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도외의 대상으로 치부하게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말처럼 『과학자들이 자연을 설명하면서 수학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이행시키는 과제에 등한했기 때문』 이라고 믿었다.
과학이 갖는 난해성과 그것이 불가피하게 만들어내는 배타성을 해소시켜볼 욕심으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과학의 세계를 어르고 푸는 글들을 썼고 그 10년 작업을 엮어 86년 『과학인의 역사의식』 이란 제목의 단행본을 펴냈다.
이번에 해동 출판사에서 낸 『과학이란 무엇인가』도 성격상으로는 전의 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간성의 과학」 「과학과 성서」의 2부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은 88년6월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과학과 신앙」이란 제목으로 『월간 신앙 세계』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추리고 또 월간 『씨의 소리』에 띄엄띄엄 발표했던 글과 전자 『과학인의 역사 의식』에서 다시 뽑아낸 글 몇편을 버무려 엮은 것이다. 『과학이 소수의 전공자나 기술 관료들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고 좀더 세속화돼야겠다는 신념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김 교수가 이책 곳곳에서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과학의 세속화」란 지나간 역사나 현상이 보여주듯 대중의 외면속에 과학이 성역화하면서 빚어내는 위험과 비극을 미리 막아보자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중세기의 과학은 일부 성직자들의 독점물이었고 그들이 권력과 밀착함으로써 부패와 억압과 공포로 특징지워지는 암울한 시대상을 연출해냈다. 르네상스 이후 줄기차게 이어진 몇차례의 역사적 민중 운동으로 이같은 「과학의 성역화」 현상은 많이 가셨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망령이 되살아나 성역화 된 과학·기술이 권력과 야합·전제하는 이른바 기술 관료 사회란 것을 만들어냈다.
『과학의 전제는 권력이 행사하는 전제보다 더 무섭습니다. 과학을 과학자에게만 맡기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핵폭탄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이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뜻에서 오늘날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과학·기술의 세속화 운동이며 그 운동을 통해서 대중이 과학을 알고 윤리적으로 감시할 수 있어야만 우리가 그토록 희원 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지름길도 열리게 되리라는 것이 이책에 담은 그의 일관된 메시지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미 신앙의 띠를 두르고 나온 모태 기독인답게 그는 이 책에 「과학이 종교와 만나고 있다」 는 매우 상징적인 부제를 달아놓았다. 『일견 모순될 듯 보이지만 과학이 지식 체계이고 종교 또한 지식 체계라면 그 두 언어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는 전제로 쓰여진 글들 이어서다.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과학이 성경의 진리와 상치될 경우 저는 그러한 과학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이책 제2부 「과학과 성서」에 실린 26편의 글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과학의 패러다임과 그 각각의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탐지했던 천재적 과학자들의 사상·행적이 성서의 가르침에서 촌보도 벗어나지 않는 일원의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또 뉴튼 이후 3백년을 이어온 기계적 인과론과 도그마주의를 하루빨리 청산해야한다는 주장을 편다. 뉴튼과 그 후계자들이 세워놓은 인과론적 과학관의 특징은 어떤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운동 법칙에 따라 반드시 예정된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는 결정론에서 찾을 수 있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이 절대 모델은 이를테면 멀쩡한 인간까지도 원자의 기계적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물신의 세계관을 낳게 됐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오도된 과학 만능주의와 양적 성장의 신화도 진원지는 바로 이 뉴튼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상대성 원리를 비롯한 불확정성원리, 우연의 법칙과 같은 20세기의 과학 혁명들은 이 도그마가 구축했던 절대성·획일성·기계성·효율성의 신화를 대체하고 인본이 숨쉴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과학의 언어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이 전면에 나서서 「물체의 과학」이 아닌 「인간성 (Humanity)의 과학」정신을 확립할 때』라고 그는 강조한다. 85년부터 그가 중심이 되어 「과학자와 철학자의 인식론적 명제의 교환」 을 기치로 벌이고 있는 「신과학 운동」도 따지고 보면 그가 주장하는 「인간성의 과학」과 같은 맥락에 선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두차례나 해직 돼 10년 가까이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참담을 겪기도 했던 그는 『정년이 멀지 않았으니 실험실을 벗어나는 그날부터 「종교와 과학」이란 방대한 체계의 저술 작업에 매달릴 작정을 세워놓았다』고 귀띔한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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