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전화, 잘 보이고 작동 쉬워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공공장소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과 불편은 다양합니다. 화재.교통사고.범죄.환자나 노약자의 긴급 상황은 물론 길을 잃거나 물건을 분실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더욱이 지하철 역사는 구조도 복잡하고 지상으로부터 고립돼 있어 심리적 불안감이 더 큽니다.

서울 지하철의 비상전화(左)는 호출 버튼이 상하로 배치돼 위는 일반인, 아래는 휠체어 이용자가 긴급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을 전면에 적용했지만 형태는 소화전이나 설비시설과 비슷하고, 주변 광고 및 표지와 섞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SOS 등 영문표기도 문제지만, 위아래 4개 버튼은 시각을 다투는 위급한 순간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런던의 비상도우미(Help Point.(中))는 화재경보.비상호출.일반통화 버튼이 차례로 배치돼 있습니다. 시설물의 형태가 크고 둥글어 인지하기 쉬운 데다 버튼 역시 상황에 따라 색상과 크기가 달라 기능 선택이 어렵지 않습니다. 비상 버튼을 누르면 구조요원과 통화할 수 있고, 카메라가 작동돼 신고자의 모습이 관찰됩니다. 일반 통화버튼을 누르면 출구.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노선 안내 등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 설계돼 뉴욕 지하철에 설치될 비상도우미(Help Point Intercom.(右))는 상단의 청색 지시등으로 인해 눈에 잘 띕니다. 뉴욕 지하철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주변 색과 중복되지 않는 색을 채택해 주목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비상 호출과 통화 버튼이 적당한 높이에 달려 있고 신고자를 볼 수 있는 카메라도 붙어 있습니다. 좁게 디자인돼 어느 벽이나 기둥에든 부착하기 편리한 데다 바닥 청소와 관리가 쉽습니다. 접근성과 사용성 모두를 배려한 좋은 디자인입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반사적으로 행동합니다. 공공 안전 시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긴급 상황에서 보이는 본능적인 반응을 고려해 디자인해야 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