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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민주화 없이 나라민주화 없다/이명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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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가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절대권력이 형성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3권분립의 제도를 설계한 사람을 지배했던 믿음은 바로 절대권력의 부패의 필연성이었다. 국가권력을 입법ㆍ사법ㆍ행정으로 나누어 분담케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이룩하여 권력의 절대화를 방지하려고 한 것이 삼권분립의 제도가 노리는 것이라 하겠다.
○당수 손에 달린 공천
육박전과 날치기통과로 끝낸 지난 회기의 국회,그리고 야당국회의원 전원 사표제출로 아직도 시야를 가리기 어려운 한국정치를 보며 민주정치의 초보원리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논자들은 우리의 국회를 통법부,행정부의 시녀라고 힐난해왔다. 물론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왜 우리의 국회는 행정부가 시키는 대로 제출된 법률안에 도장만을 찍어주게되는 것일까.
우리와 같은 양당제도 아래서,더욱이나 과거와 같은 1구2인 선출제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공천권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천권은 당권을 쥔 당수의 수중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당의 경우 당수가 곧 대통령인 상황아래서는 여당 국회의원의 목줄은 대통령의 수중에 들어있게 된다. 국회의원은 공천권을 쥔 사람의 명령에 따라 이리뛰고 저리뛰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치의 원리로 보면 국회의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지만,실제에 있어 여당국회의원은 대통령의 충실한 심부름꾼일 뿐이다.
공천권을 손에 쥔 사람의 명령을 거스른다는 것은 적어도 자기의 정치생명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고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나 과거와 같은 절대권력을 쥔 공천권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당할 위험에 직면한다.
결국 다수당인 여당의원의 행동반경은 매우 협소하다. 행정부가 제출한 법안들에 대해 반대의 손을 올리는 일은 여당 국회의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여당은 다수이므로 여당의원의 찬성은 국회의 통과를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선 야당의원에게 남겨진 선택의 폭도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반대하나마나한 반대표를 던지든가 회의에 불참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민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해야할 중대사안일 경우 극단적인 방법에 호소하게 된다. 점거 농성ㆍ주먹흔들기 등과 같은 몸싸움 등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저항에 부딪친 여당은 이곳 저곳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숨바꼭질을 거듭하다가 방망이 세번 때리는 소리로 모든 절차를 대신한다. 이른바 날치기 통과가 번갯불에 콩구어먹듯 행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국회의 존재이유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독자적인 입법활동을 통해 행정부의 횡포가능성을 견제해야 될 위치에 있는 국회가 견제는 커녕 소수인 야당의 견제가능성마저 다수의 힘으로 완전히 봉쇄할 뿐 아니라,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눈치와 지시에 벌벌떠는 다수 여당국회의원들 때문에 행정부의 충실한 심부름꾼의 전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분명히 이런 국회는 3권분립의 외양만을 보여줄뿐,권력의 집중을 막는 민주정치의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정치를 위장하는 분장도구일뿐이다. 이것은 분명히 민주정치의 위기를 함축한다.
○「통법부」굴레 못벗어나
이 땅의 국회는 40여세가 되었다. 그동안 몇번의 쿠데타로 의회정치가 중단되는 암흑시대를 제외하더라도,40여년동안 우리의 국회는 본질적으로 행정부의 시녀로서 통법부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물론 4ㆍ19이후 잠시 있었던 내각책임제 시절은 예외지만).
이러한 민주정치의 왜곡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정당제도의 비민주적 운영에 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공천권등 당권을 한 사람의 손안에 쥔 당수중심의 정당운영에 그 원인이 있다.
미국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의 당수와 같은 막강한 실력자는 없으며,따라서 대통령이 자기소속 정당에서 차지하는 권력의 위력도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
대통령은 당수가 아닐뿐 아니라,국회의원의 공천권을 한손에 모두 쥔 어떤 사람도 당안에 없다. 국회의원후보는 예비선거를 통해 확정된다. 말하자면 국회의원공천권은 당수가 아니라 일반국민(당원)의 손에 쥐여 있는 셈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자기의 소속정당의 의원에 대한 영향력은 결코 특별한 것일 수 없다.
여당국회의원이라해서 대통령에게 꼼짝 못해야 할 아무런 구속력이나 이유가 없다. 소속정당이 동일하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특별한 끈이 매달려 있지 않다.
○국민 손으로 넘어와야
이런 상황아래서 여당국회의원은 자기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 제출된 법안에 대한 합리적 검토와 토론에 임할 수가 있다.
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천권을 비롯한 막강한 당권을 한 손에 모아쥔 당수가 없으므로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지휘아래 무조건 반대표를 던져야 야당국회의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한국의 정치가 민주의 본궤도에 따라 움직이며 국회가 정상궤도에 따라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후보를 선정하는 권한을 당권을 쥔 사람의 손으로부터 국민의 손으로 옮겨놓는 정당정치의 민주화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당의 민주화없이 한국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서울대교수ㆍ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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