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살리는 일이 급선무다/경종울린 경제 조로화현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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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산업경쟁력의 저하에 있다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경쟁력의 종합지표라고 볼 수 있는 수출이 신장을 멈추고 이미 20개월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나 수입이 급격히 늘어 국제수지를 흑자에서 적자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은 모두 국내외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있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31일 대한상의가 발표한 「주요 국가의 경쟁력 요인 비교조사」보고서는 이처럼 뒷걸음질치고 있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어떤 부문에서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경쟁상대국과의 비교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보고서는 물가ㆍ임금ㆍ노동효율ㆍ교역조건ㆍ산업구조ㆍ기술개발력ㆍ투자활력ㆍ금리및 조세ㆍ유틸리티 비용ㆍ기업재무구조ㆍ행정절차 등 11개 부문에 대한 경쟁력과 여건 조사결과 우리 산업은 에너지및 사회간접비용을 나타내는 유틸리티 부문에서만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 나머지 10개 부문에서는 모두 경쟁상대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우리 산업구조가 꽃도 활짝 피어보기 전에 이미 조로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산업구조는 제조업의 대GNP 비중이 60년대부터 시작된 공업화 추진이후 꾸준히 높아져왔으나 88년의 37.4%를 정점으로 급격히 후퇴,89년에는 33.2%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일단 40∼45%까지 올라갔다가 금융ㆍ보험ㆍ통신 등 3차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 단계에 이르면 이미 경제가 활력을 잃고 노화증상을 보이게 마련인데 우리는 제조업이 미처 성숙하기도 전에 노화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선진국형의 3차 산업의 발달이 아닌 소비성 서비스산업의 이상비대로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지난 한해의 제조업 비중 감소만을 보고 우리 경제의 조로화를 걱정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로자들의 제조업 기피경향이나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 등 일련의 현상은 조로화증상이 한때의 걱정으로 끝날 일이 아님을 시사해 주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 상반기중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활황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이 9.8%에 달함에 따라 마치 우리 경제가 회복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착각,안도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상의보고서는 이같은 안도감이 환상에 불과하며 사태가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일깨워준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일고 있는 건설이나 서비스경기가 스스로의 한계에 부닥쳐 거품처럼 꺼지는 경우 우리가 의지할 곳이 어디겠는가 심각히 생각해 볼 일이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한 나라 경제의 기초는 제조업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의 바탕위에서만 제대로 설 자리를 찾을 수 있음은 다른 나라들의 성쇠의 과정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가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는 모든 일에 앞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정부ㆍ기업인ㆍ근로자 모두가 제조업을 살리는 일에 나서야할 난국임을 깨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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