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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어린이만 읽는게 아니죠"|창작동화집 『바람과 풀꽃』 펴낸 아동 문학가 정 채봉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동화 작가인 정채봉씨는 작은 키에 아주 또록또록한 눈을 가지고 있다. 머리를 짧게 치켜 깍아서인지 마흔 다섯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퍽 젊어 보인다.
요즘 창작동화집 『바람과 풀꽃』을 대원사에서 또 퍼냈는데 「또」라는 부사를 건 그의 저술 작업이 바쁘다는 느낌을 안길 만큼 잦아졌기 때문이다.
83년이래 통산 11권의 책을 써낸 그는 올해 들어서만 『향기 자욱』 『초승달과 밤배 2』『그대 뒷모습』 (에세이집)에 이어 이번의 『바람과 풀꽃』으로 4권의 저서를 갖게 됐다.
『글을 많이 써내자고 일부러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이 묶여졌어요.
한편 한편의 동화를 끝낼 때마다「이 다음엔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가슴을 훑곤 하는데 바로 그 한순간에 창작의 영감이 다시 솟아 글을 쓸 수 있게 되는걸 보면 인간의 능력이란 수요를 따라 거의 무한으로 뻗쳐져 있는 것인가봐요』
창작 동화집으로 다섯번째가 되는 『바람과 풀꽃』에는 그가 86년 이후 써놓았던 동화 32편이 추려져 실렸다. 책제목이 그렇듯 이 책에 실린 짤막짤막한 글들에는 별과 풀·꽃·바람·새 등의 의인화된 자연과 어린이들의 티없이 맑은 동심이 어울러 빚는 독특한 하머니가 살아 숨쉬고 있다.
정채봉씨는 글을 쓰면서도 언어를 쪼고 다듬는 일에 남달리 마음을 쓰는 작가다. 그는 그걸 『작가의 책임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글을 아무렇게나 잘못 쓴다는 건 여자가 생명처럼 여기는 정절을 잃는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동 문학가이며 그의 문학 선배이기도한 유경환씨는 이런 정씨를 가리켜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온 세월의 길목, 그 힘겨웠던 고비에서 우리는 가장 동화를 잘 쓰는 한 작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정채봉』이라며 『정채봉 동화와의 만남으로 해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월을 살게된 것을 차라리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채봉씨가 동화 작가의 길을 걷게된 건 7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이 당선되고부터다. 그는 신춘 문예 철마다 소설을 응모해 몇차례 떨어진 경력을 갖고 있던 소설가 지망생이었으나 그 해에는 소설에 삽화로 붙이려던 이야기를 따로 떼어 동화 한편을 만들고 소설과 함께 응모했었다.『소설은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던 동화가 당선됐는데 막상 준비 없이 동화 작가 대접을 받을 생각을 하니 그렇게 막연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조카 방을 뒤져 책장에 꽂힌 동화책이란 책은 모두 가져다 읽으며 동화 작법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게 그 무렵 읽은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는데 그에게 『큰 그릇 (장르) ,작은 그릇을 가릴 계제가 아니라 남들이 대수롭잖게 여기는 동화로도 문학의 큰 뜻과 이상을 능히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준 것도 바로 이 책이었다고 한다.
바쁜 직장 생활에다 원고를 달라는 곳도 별로 없었던 탓에 그는 데뷔 후 10년 동안 고작 단편 동화 23편을 쓰며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83년에 이미 발표됐던 그 작품들을 추려 『물에서 나온 새』란 동화집을 냈고 그것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자가 된 뒤로는 86년 『오세암』, 88년『숨쉬는 돌』, 89 년『꽃 그늘 환한 물』, 올해『바람과 풀꽃』등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창작동화집 한권씩을 퍼내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새싹 문학상·한국 불교 아동 문학상 등을 받아 비교적 상복이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어쨌든 첫상을 받은 뒤부터 글 쓰는 일에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은 것 같아요』
그림을 아우른 일종의 잠언집으로 85년부터 지금껏 월간 『샘터』에 연재해오고 있는 「생각하는 동화」를 묶어 『멀리 가는 향기』 『내 가슴속 램프』 『향기 자욱』 『모래알 한가운데』 등 4권의 단행본을 따로 갖고 있는 정씨는 동회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서구에서는 동화도 대상 독자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게 일반화돼 있습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미카엘 엔데의 「모모」 등이 그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안데르센도 말했듯이 동화를 어른들이 수용할 수 없다면 그건 작가의 책임이지 독자의 책임은 아닌겁니다』
그래서 그는 동화에 「어린이용」이라는 울타리를 치는 일에 한사코 반대하는 입장이다. 어린이가 읽어 이해가 안되면 엄마가 보고 살을 붙여주는 그런 동화를 쓰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책을 뒤져 골라낼 만한 능력이 없으므로 그들의 책 읽기를 돕고 지도해야할 부모나 선생님이 먼저 읽을 책을 쓰겠다는 뜻이다.
『물론 동화가 근원적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 돼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동화가 어른들에게나 즐겨 읽히면서 어린이의 손에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안타까움이 입니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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