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서 쫓겨난 여직원|출근 투쟁 5개월째|파리바 은행의 박현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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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조 활동과 관련해 부당한 사임 압력을 받다 해고당한 외국은행 여직원이 다섯달째 외로운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다.
주인공은 70여개 외국 은행에 근무하는 한국인들 중 「해고 조치 1호」가 된 박현옥씨 (32·여).
박씨는 해고 직후인 3월5일부터 날마다 서울 종로 1가 교보빌딩 21층에 있는 파리바 은행 (지점장 알렝 드 상투) 에 나가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개인의 권리와 명예를 되찾겠다는 단순한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국내에 들어와 엄청난 이익을 챙기면서도 한국인 직원들의 권리 행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외국 은행의 횡포를 폭로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습니다』.
두 딸의 엄마로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고 있는 형편이지만 박씨는 은행측이 동료들과의 접촉까지 막고 『당신이 아무리 애써도 내가 이기게 돼 있으니 포기하라』고 조소하는 프랑스인 지점장을 대할 때마다 외로운 싸움을 멈출 수 없다는 투지가 타오른다고 말했다.
박씨가 파리바 은행에 입사한 것은 77년 창립 때. 당시만 해도 20명 남짓한 전 직원이 노조원이었지만 노조 활동으로 경영진과의 마찰은 없었다.
『86년 현 지점장이 부임해 오면서 노조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노조원은 절대 승진시키지 않아 노조를 탈퇴해야 승진이 가능했습니다.
창립 때보다 직원수가 3배로 늘었지만 새 지점장 부임 후 노조원수는 계속 줄어만 갔습니다.』
지점장의 노조 탄압에 끝까지 저항하던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지난해 8, 9월 견디다 못해 사표를 내고 은행을 떠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노조 창립 멤버로 부위원장과 조직부장을 지내 은행측에 「눈엣가시」였던 박씨에게도 갖가지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1일 첫 충돌이 생겼다. 비 노조원인 최모 과장 (32)이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사무실에서 박씨를 때렸고 은행측은 기다렸다는 듯『은행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박씨를 대부계에서 대부계 보조직으로 인사 조치했다.
은행측의 사임 압력에 맞서 박씨는 최 과장을 폭력 혐의로, 상투 지점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각각 경찰과 검찰에 고발해 힘든 싸움을 시작했으며 은행측은 지난 2월14일 박씨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서를 보내왔다.
박씨가 그래도 계속 출근하자 상투 지점장은 2월22일 박씨 앞에서 해고 통지서를 직접 낭독하던 중 박씨가 자리를 뜨자 뒤쫓아와 팔을 비틀고 머리를 벽에 부딪쳐 박씨는 다시 상투 지점장을 고발, 출근 투쟁과 함께 법적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높은 보수라는 「당근」으로 한국인의 노조 활동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한국인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 기업의 횡포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됩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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