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시장 가기 겁난다|김희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르는 요즈음 주부들의 가계부는 항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장마 때문에 채소 값이 폭등한다고 하지만 오르는 것이 채소 값 뿐만은 아니다. 거의 모든 생필품 값이 뛰고 있다.
아이가 셋인 나는 언제부턴가 무엇을 사든 질보다는 양을 따지게 되었다. 토마토 하나를 골라도 동글동글하고 반짝거리는 것보다 울퉁불퉁해서 볼품은 없지만 썰어놓으면 한 접시가 거뜬히 나오는 큰 것에 눈이 먼저 가곤 한다.
올해처럼 비가 많은 해면 떠내려 간 벼 포기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뿌리째 뽑히는 콩밭 속의 열무를 가슴 아프게 지켜본다.
잦은 비로 푸르던 수박 덩굴이 시들어 갈 때 날이 저물도록 도랑을 치워주며 한 포기라도 살리려 무던히도 애쓰시던 어머니지만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0여년이 됐지만 비가 많은 해면 항상 밭곡식과 어머니가 떠오른다. 올해도 지난날의 내 어머님처럼 우리 농촌의 부모님들은 주름살이 더 늘어갈 것이다.
나도 농촌에서 태어나 25년을 살아왔건만 내릴 줄 모르는 농산물에 농민들을 생각하기 보다 한푼이라도 더 값을 깎으려 는 월급쟁이 아내가 되어간다. 어떡하든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서 물가는 내려야 할텐데….
배추 한 포기를 2천원에 사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우산 장수와 짚신장수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비가 오면 큰아들은 장사가 잘 되나 작은아들이 허탕을 치고 날이 들면 작은아들은 돈을 버나 큰아들이 장사가 안되고…. 지금 내 심정이 그런게 아닌지.
나에게 꿈과 이상을 키워준 농촌, 꿈만 꿔도 정겨움으로 가득찬 그곳이건만 각박한 도시생활에 여유를 잃은 나는 갈수록 무거워만 가는 생의 무게에 요즘은 시장 가기도 겁난다. 오늘 점심은 풋고추 몇개에 고추장을 찍어 대충 먹었다. 그 옛날 모르는 사람한테도 고추와 호박·가지 등을 한바가지씩 따주던 인정을 그리워하며 작은 마늘 한쪽도 오고갈 줄 모르는 도시의 각박함에 나 또한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인천시 서구 가정동 542의1 태화 미성 아파트 10동108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