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따뜻함에 가슴 촉촉해지다 자신도 모르게 죽음도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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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할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할머니는 엄마와는 또 다른 모성의 원천이다. 아이들에게 페터 헤르틀링의 '할머니'(비룡소)를 읽혀본 적이 있다. 나이와 이해력의 수준이 들쭉날쭉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무엇을 '느끼는가'이므로.

고아가 된 다섯 살 꼬마 칼레는 욕쟁이에 다혈질인 할머니하고 살게 된다. 험한 세파를 헤쳐온 거친 할머니와 칼레는 서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칼레에게는 할머니가 세상의 전부다. 칼레는 차츰 할머니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두 사람은 아름다운 파트너가 된다.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아이들은 할머니가 구덩이에 빠진 장면에서 모두 요절복통 웃어댔다. 또 "넌 내가 내 비밀을 한꺼번에 다 가르쳐줄 줄 알았니? 어림없어!"라고 선언하는 대목에서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비밀 한 가지씩을 털어놓기도 했다. 현명한 페터 헤르틀링은 글 속에 죽음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쓸함과 죽음에 대한 불안이 글 곳곳에 녹아 있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그것을 간파해냈다.

자기 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혹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외로움에 대해 철학자처럼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고독'이 소설의 영원한 변주 테마 중 하나인 노인과 소년과의 관계뿐 아니라, 유한한 인간사의 모든 관계를 대변하는 키워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앞마당의 감나무처럼 푸근한 할머니와의 추억을 품고 있는 엄마들이라면 할머니를 가지지 못한 아이, 혹은 소원하게 살아가는 자녀와 함께 오늘 '할머니'의 사랑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과보호로 자기중심적이 된 아이들에게 이 작품이 다소 무겁게 여겨진다면, 삶의 활력소가 될 다른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겨보자.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미라 로베의 '사과나무 위의 할머니'(중앙출판사)를 읽다보면 아이들은 따사로운 햇살 한 조각을 가슴 깊이 품게 될 것이다.

작가 크리스티앙 그르니에는 "할머니들은 때로 많은 슬픔을 위로해 준다. 할머니에게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진리임을 깨닫게 될 때쯤, 점점 메말라 가는 아이들의 마음은 할머니로 인해 어느새 촉촉한 행복에 젖게 될 것이다. 대상 연령은 할머니를 사랑하는 10세 이상의 아이들과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모든 어른들.

임사라 동화작가(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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