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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죄는「외국기술 특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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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각국의「기술전쟁」이 뜨겁다.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급기술로 높은 품질의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길 외에는 다른 왕도가 없다. 따라서 저마다 기술개발에 심혈을 쏟고 개발한 기술은 여간해 넘겨주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 기술의 무단 복제 등에도 강력하게 대응키 위해 지적소유권 협상을 강요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술이 쓰였다 싶으면 곧바로 소송이 들어온다. 최근 날로 격화되고 있는 국제 무역환경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선진국으로부터의 첨단 기술을 체계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기술도입 환경과 기술무역수지 패턴의 변화, 앞으로의 대책 등을 알아본다.【편집자주】

<현황>
우리 경제는 60년대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과감한 외국인 기업의 유치 등을 통한 기술도입, 국내에 풍부히 존재했던 저임의 양질노동력에 의해 양적 확대를 거듭했다.
그러나 우리 제품수준이 높아져 일부에서는 경쟁상대로까지 부상되자 부머랭 효과를 의식한 선진국이 기술이전을 기피, 기술 고급화·기술무역 문제가 대두되게 되었다.
우리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첨단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의 도입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따라서 60년 이후 단 한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던 기술무역 적자폭은 점점 더 확대될 조짐이다.
실제로 국내업계는 기업무역 수지의 적자가 단기간에는 전환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금까지 외국으로부터 도입한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급성장을 해와 특허권을 갖고있는 자체기술 개발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선진기술을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선진국 업체들이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는 높은 특허료를「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라도 물면서 우리 기술수준이 일정 단계에까지 이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외국기업들은 한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컴퓨터·반도체 산업에 대해 로열티·특허료 압박을 집중시키고있다. PC (퍼스널컴퓨터) 업계는 현재 외형의 7%를 로열티로 내고 있으며 일부 반도체회사는 1개 사가 연간 1억 달러를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다.
특히 외국기업들의 기술이 PC·주변기기에 모두 적용되는 기본특허인 경우가 많아 로열티를 물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금성사 등 국내 6개 PC업체와 SKC(디스켓 생산) 는 작년에 1년여 동안 끌어온 협상을 마무리지으면서 미IBM사에 지금까지의 소급 분으로 7백40만 달러를 지불하고 앞으로 판매가의 3%를 경상 로열티로 지불하기로 했다.
미 SGS톰슨사와 D램 및 S램분야에서 특허권 분쟁을 일으켰던 현대전자는 자사가 갖고 있는 특허권을 주는 것은 물론 상대방에서 쓸만한 것이 없다고 인정할 경우는 사서 주기까지 하는 크로스라이선스를 체결하고 사건을 매듭지었으나 앞으로는 일정액의 로열티를 물어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남산업의 경우는 자신들과 수입 판매권을 갖고있는 미국의 VLSI테크놀러지사·사이프러스사 등 5개회사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TI)로부터 플래스틱 패키지에 관한 기술의 특허료 지불을 요구받고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여기에다 TI사는 삼성전자·대우통신 등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PC특허료를 요구해와 국내업계가 이들과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다.
무역협회 박종천씨(해외조사과장)는『비싼 특허료를 물더라도 우리가 수출을 안 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며 분쟁발생 이전에 대처하는 한편『대체특허의 발굴 및 도입, 관련 특허의 매입 등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변화>
기술 수출액과 기술 수입액의 격차를 나타내는 기술조정 수지의 적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89년 우리나라의 기술수출 실적은 29건에 1천50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기술 수입액은 7백63건에 9억3천만달러에 달했다.
이를 88년과 비교해보면 기술수출은 건수에 93%, 금액은 18%의 증가세를 보였고 수입은 건수에서 1.6%, 금액에서 37.6%가 증가했다.
즉 외국기술의 도입추세가 대규모화하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반면 우리 기술은 부가가치가 몹시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기술 수출과 수입의 질적인 내용이다.
지난해 도입한 기술 중 특허권을 수반한 고급기술은 3백56건으로 전체의 47.8%인 반면 우리가 수출한 기술 중 특허권을 수반한 것은 금성통신의 사설구내 교환시스팀(PBX) 1건뿐이다.
지난 86년부터 수출한 74건 중에서도 특허를 수반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수출한 기술은 특허를 수반하는 고급기술은 거의 없고 노하우·기술용역·기술정보·자료 등 값싼 기술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우리의 대미·대일 기술도입 비율이 각각 전체의 32%, 45%에 이르는 것도 큰 문제다.
이렇게 특정 국가에 기술도입이 지나치게 집중됨으로써 산업 예속화·무역적자·핵심기술이전 기피 등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허청의 황의창씨(국제 특허 연수원 기획과장)는『기술예속의 위험을 피하고 대일 무역역조의 시정과 경쟁을 통한 효율적인 기술도입을 위해서는 기술 도입선을 EC 등 유럽지역에까지 확대할 시기』라고 말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손찬현 박사는 89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우리의 기술교역 수지(기술 수출액/기술도입액 × 1백) 가 1.1%인데 이는 87년 미국의 6백76.0, 일본의 33.9, 서독의 49.4, 영국의 1백8.0% 등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우리가 외국기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경제성장이 우수하고 값싼 노동력,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지금까지 고속 질주를 해왔으나 앞으로는 기술개발을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이룩하지 않고는 지금까지와 같은 고속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지난 86년 VTR 제조기술의 도입 이후 특별한 첨단산업 관련기술을 들여오지 못한 점을 강조,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앞으로 지적소유권의 보호가 한층 강화될 새로운 국제 무역환경에서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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