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불구 외국자본 안 떠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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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으론 시장이 평온하지만, 장기적으론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크레디트 스위스 투자은행의 리토 카마초(Lito Camacho.사진) 부회장은 북한 핵실험이 한국 경제에 몰고 올 파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필리핀 에너지장관과 재무장관을 차례로 역임한 그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아시아 금융전문가 중 한 명이다.

2박3일의 방한 일정을 끝내고 떠나기에 앞서 중앙일보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평가는 지금의 주가와 환율에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 금융계가 매겨 온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번에 확인된 셈이고, 이번 사태로 그러한 리스크가 증가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앞으로 있을 부정적 영향의 하나로 한국의 신용등급을 꼽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신용평가사들의 한국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이었으나, 이번 일로 당분간 신용등급 상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외국 자본의 한국 시장 이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그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 누구도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길 원하지 않는 만큼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1인당 국민소득(GDP)이 2만 달러에 육박하는 한국 금융시장의 펀더멘털이 강하고, 매력적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북한 핵'이라는 위험덩어리를 안고서도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평가했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금융산업의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 같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필요조건으로 그는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꼽았다. "사람과 자금의 왕래가 자유로워야 한다. 인력과 돈이 국경을 넘나드는 데 드는 비용(friction cost)이 낮아져야 한다" "국내 금융사와 외국 금융사의 경쟁을 유도해야 국내 금융시장의 체질이 강화된다"는 등의 조언을 쏟아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외환 반입과 반출이 보다 용이하게 개선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금융사의 국제경쟁력에 대해선 더욱 신랄했다. "제조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1등 하는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금융기관은 왜 국제적으로 힘을 못 쓰는가"라고 꼬집었다. 한국 은행들의 국제경쟁력이 한국의 평균적 잠재력에 비해 너무 처져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한국 금융사들이 고객의 다양한 국제 금융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침없이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예컨대 산업은행 같은 것을 정부 소유라 해서 기능을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 큰손들과 맞설 수 있도록 종합금융회사로 키워 나가야 한국의 금융허브 전략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금융허브가 되려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금융회사가 필요하다"면서 "산은이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 인수합병(M&A),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을 통해 축적해 온 역량을 위축시킬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국책은행은 민영화 등 소유 구조 개편보다 어떻게 운용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며 "싱가포르의 DBS그룹과 프랑스의 CDC 등 정부 소유이면서도 효율적 경영으로 성공한 많은 사례를 벤치마킹하라"고 권했다. 민영화 자체보다도 은행 경영의 효율성 제고가 궁극적 목적임을 재삼 강조했다.

정부 소유 은행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라고 묻자, 그는 "그렇고 말고(absolutely)!"라고 잘라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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