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보수회귀”조짐/진보파 기수 브레넌판사 은퇴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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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관 9명중 보수우세 확실/부시,후임에 보수파 「낙점」할 듯
미연방대법원 진보파의 기수 윌리엄 브레넌판사(84)가 지난 20일 34년간의 대법관 봉직을 마무리짓고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앞으로 10여년간 미법조계는 보수성향으로 회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대법원은 종신직 대법관 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는 보수성향 5명,진보성향 4명으로 박빙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진보파 브레넌의 퇴진으로 후임에 누가 지명되느냐에 따라 미대법원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브레넌 후임에 다른 보수계 법조인을 임명할 것으로 전망돼 대법원의 보수화 강화는 기정사실로 점쳐지고 있다.
미대법원의 보수화현상은 레이건전대통령이 86년 윌리엄 렌퀴스트대법원 판사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것을 비롯,산드라 오코너,안토닌 스칼리아,앤터니 케네디판사등 보수주의 색채가 강한 4명을 포진시킨데서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현재 판도는 렌쿼스트대법원장을 정점으로한 5명이 보수성향을,브레넌,스쿠드마셜판사등 4명이 진보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다만 보수 5명중 여류인 오코너와 케네디판사가 비교적 온건파 인물로 사안에 따라 중도적인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브레넌판사의 사퇴발표가 나온뒤 부시대통령은 『엄격한 법률해석자를 원한다』고 밝혀 자신과 맥을 같이하는 보수인물중에서 후임자를 지명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부시의 이같은 의중을 감안해 볼때 물망에 오르고 있는 후보자는 케네스 스타 연방법무차관 또는 오린 해치 유타주 공화당상원의원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외에 패트릭 하기보덤판사,예일대법학교수를 지낸 랠프 원터,보수흑인판사 클래런스 토머스,여성법관 에디스 존스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들이 낙점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상원의 비준을 받게될 지는 의문이다.
브레넌판사는 지난 56년 아이젠하워대통령에 의해 대법원판사로 지명된 이후 줄곧 법조문속에 매몰돼버리기 쉬운 인권과 자유확대에 모든 것을 쏟아왔다.
브레넌판사의 많은 업적가운데 특히 평가를 받고 있는 부문은 형사피의자의 인권보호 및 소수민족,여성들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시킨 판례들이다.
재직중 1천2백여건 이상의 진보적 법이론을 제시,미헌법정신이 그대로 실정법 운용에 스며들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진보적인 법해석가로서 그의 업적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사형제도 및 낙태금지에 대한 반대,학교내에서의 흑인 및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금지토록한 것등도 다 그의 업적이다.
최근에는 논란을 빚어왔던 미성조기 소각문제와 관련,『국기의 존엄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소중한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주도함으로써 미조야를 흔들어 놓기도 했다.
브레넌판사는 1906년 4월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출생,펜실베이니아대 및 하버드대를 거쳐 변호사로서 법조계에 입문했다.
그후 2차대전중 미육군대령으로 복무했으며 하버드대등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은뒤 뉴저지주지법에서 판사로 재직중이던 56년 대법원판사에 지명됐다.
그는 다음해 3월 상원으로부터 반대 1명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지지로 인준을 받았다. 유일한 반대자였던 조제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그가 공산주의에 너무 유화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부표를 던졌다.
공화당대통령에 의해 대법원판사에 지명됐으면서도 스스로 민주당이라고 소신을 밝혀온 그는 70년대에 들어 워런 버거대법원장과 더불어 진보주의의 기수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견을 갖고,또 표현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자유중의 하나』라고 설파한 브레넌판사의 퇴임이후 미대법원의 진보­보수세력의 재편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주목된다.<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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