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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미국도 중동·아시아·남미 석유동맹에는 못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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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아트(브랜다이스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그의 책 <미국의 거대전략(a grand strategy for america>( 2004년판)에서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뤄야 할 전략적 목표들을 그 중요도에 따라 번호를 매겼다. 여기서 아트가 말하는 '거대전략'이란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가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국의 군사력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를 뜻한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남진정책을 거대전략으로 삼았다. 19세기 초강국이었던 영국은 그러한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하는 것이 거대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아트 교수는 미국을 위한 거대전략에서 중요도의 순서로 '우선적인 국가이익' 여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미리 막는다. 둘째, 유라시아 대륙에서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막는다. 셋째, 석유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태를 이어나간다. 넷째, 개방된 국제경제 질서를 지켜나간다. 다섯째, 해외에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확산을 촉진하고, 내전의 와중에 인종청소나 대량학살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여섯째, 지구의 환경을 특히 지구온난화와 극심한 기후변화의 악영향으로부터 지켜나간다.

미국이 설정해야 할 거대전략 가운데 석유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항해 미국 본토를 지키는 것 다음으로 높게 설정돼 있다. 이는 곧 세계 석유자원을 미국이 확실하게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 이란과 긴장관계를 보이는 배경에도 석유가 얽혀 있다. 미국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함으로써 언젠가는 이란이 북한처럼 핵무기를 지니고 미국을 위협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렇게 되면 중동지역의 친미 국가인 이스라엘에도 커다란 안보 위협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반미 노선과 핵 개발 움직임을 빌미로 이라크에 이어 이란을 선제공격할 듯한 위협적인 태세를 보여 왔다. 그렇지만 미국이 이란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더욱 결정적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이란의 풍부한 석유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이란도 주요 산유국의 하나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1,325억 배럴로 이라크(1,150억 배럴)를 앞선다. 사우디아라비아(2,627억 배럴)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지닌 나라다. 따라서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 이어 이란에 친미 정권을 세울 수만 있다면 미국은 중동 지역의 석유를 지배함으로써 앞서 아트 교수가 말한 6개 거대전략의 한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 된다.

미국의 지도자들과 석유자본가들이 걱정하는 대목은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장악해온 세계의 석유 및 천연가스 시장 질서를 흔들어대는 구도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면 남미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반미 국가들의 움직임이 하나이고, 러시아-중국-이란-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움직임이 다른 하나다.

이들 국가가 에너지동맹을 맺고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항하고 나선다면 세계 석유 지배를 둘러싼 세력판도의 무게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와 남미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최근 들어 미국이 인도의 핵 강대국 지위를 뒷받침해 주는 등 인도와 강력한 동맹관계를 꾀하는 것도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를 놓고 벌어지는 '새로운 거대게임'과 관련이 있다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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