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으로 북한에 주던 당근 끊으면 그것이 채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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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북한이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그간 한국과 국제사회가 쓸 수 있는 '채찍'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주던 '당근'을 끊음으로써 그걸 채찍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헤지펀드의 대부'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18일 이같이 말하며 "북 핵실험은 이미 새로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소로스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 핵실험은 북한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며 "북한은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하기 위해 핵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로스 회장은 이어 "부시 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 등으로 표현하며 비난하고 정권교체를 거론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오히려 이런 외부의 위협이 북한 정권의 존속을 더욱 공고히 한다"고 꼬집었다.

소로스 회장은 2004년 펀드의 경영권을 두 아들에게 넘긴 뒤 현재는 그가 설립한 '열린사회재단' 활동에 주력하며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낙선을 지지하는 단체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부시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또 "햇볕정책이 북 핵실험을 야기했거나 북한 체제 유지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지나친 대북 포용정책으로 북한 체제 강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금이 바로 북한에 주었던 당근을 끊고 채찍을 행사할 때"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일본의 대북 경제봉쇄 조치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소로스 회장은 북한 문제가 이란 문제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시 정부의 대테러 전쟁으로 정적인 사담 후세인과 탈레반 세력이 제거된 뒤 승리감에 도취한 이란이 더 위협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앞서 소로스 회장은 세계지식포럼 기조연설에서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확신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주택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해 1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택 재고가 쌓이는 등 버블은 사실 붕괴하기 시작했다"며 "주택 버블이 붕괴할 경우 미국의 소비자 행태에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이 주택담보 대출로 소비를 해온 탓에 주택 가격의 하락은 자칫 소비 감소를 불러와 경기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발(發) 경기둔화가 글로벌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경계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내수 중심의 경제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혁을 촉구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소로스 회장은 그러나 투자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현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어디에 투자하면 좋으냐, 한국에 투자할 계획은 없느냐 등의 질문에 대해 "투자 일선에서 물러났다"며 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 과정에서 실수를 인지하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란 기자

◆ 소로스 회장은=헝가리 태생의 유대인으로 1956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85억 달러(약 8조원)의 재산을 가진 부호다. 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하루 만에 10억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펀드의 연평균 복리수익률은 28.6%에 이른다. 펀드가 설립된 69년에 1000달러를 투자했다면 지금은 514만 달러로 불어났다는 의미다. 지난해 23억6700만 달러를 기부해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발표한 세계 자선사업가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전과 연인 사이로 밝혀져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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