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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아일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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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과 아일랜드는 닮은꼴이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것처럼 아일랜드는 오랜 영국의 식민지였다. 일제가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도록 말살 정책을 폈지만 끝내 동화되지 않은 것처럼 아일랜드는 영국 국교회(성공회)로의 개종 탄압에 맞서 꿋꿋이 가톨릭을 지켜냈다.

굶주림과 가난을 경험했던 것도 똑같다. 우리 부모 세대가 보릿고개를 겪은 것처럼, 아일랜드인들에겐 가뭄과 기근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아일랜드의 대기근(1845~49)은 참혹했다. 척박한 땅에 자라던 몇 안 되는 작물인 감자농사가 가뭄이 들어 당시 인구 800만 명 중 150만 명이 죽었다. 마을은 폐허가 됐고, 배고픔을 참다 못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일제의 학정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멕시코.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을 떠났던 우리 조상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국민적 기질도 비슷하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즐기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거리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펍(선술집)은 초저녁부터 사람들로 넘쳐난다.

악착같은 근성과 근면함도 비슷하다. 이런 기질을 바탕으로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성장의 기적을 일궈냈다. 두 나라는 지금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IT강국으로 발돋움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과 아일랜드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진국이었다. 80~90년대 한국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네 마리 용'으로, 아일랜드는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로 불리며 고속 성장의 신화를 이어 갔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던 94년 한국(1인당 국민총소득 9459달러)과 아일랜드(1만3753달러)의 수준은 비슷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궤도로 진입하는 것 같다. 지난해 아일랜드(4만667달러)와 한국(1만6291달러)의 소득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에서도 아일랜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94년 아일랜드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19위로 한국(24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06년의 성적표는 확 달랐다. 우리는 38위로 밀려난 반면 아일랜드는 11위로 뛰어올라 10위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05년(아일랜드 12위, 한국 29위)보다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뿐 아니다. 아일랜드에는 요즘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유럽 등지로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03년 2만9800명이던 순이민자 수가 2004년 3만1600명, 2005년엔 5만3400명으로 늘었다. 우리는 어떤가. 2003년 1만9514명, 2004년 2만3866명에 이어 2005년에는 2만4391명이 한국땅을 떠났다.

왜 그럴까. 무엇이 한국과 아일랜드의 차이를 이토록 벌려놓은 것일까. 아일랜드인들은 해답을 션 레마스 총리라는 지도자에게서 찾는다. 59년 야당 출신으로 총리에 오른 레마스는 12년간 집권하면서 ▶과감한 외국투자 유치와 개방정책 ▶교육에 대한 무상 지원 등 아일랜드 '리모델링'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마이클 가비 아시아 총괄사장은 "레마스 총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 전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직접 혜택을 느끼게 함으로써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르는 사회적 신뢰의 틀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도 10년, 20년 뒤를 바라보고 국민과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한 마스터 플랜을 세운다면 설사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정책을 뒤집거나 반대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어떤 정책이 성공하고 실패하느냐는 일관성과 이를 따르는 국민적 믿음에 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 더블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