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로 국제경쟁력 키울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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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직도 우리에겐 얼마 전 끝난 이탈리아 월드컵축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특히 한국팀이 예선 관문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고도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한 경기를 하자 국민모두가 전문가적 입장에서 한국축구의 개인 기술, 선수 각자의 열의, 팀웍, 작전, 조직 관리, 감독의 능력 등을 나름대로 평가하곤 했다.
그러나 내 가슴에 크게 와 닿는 한마디는 어느 축구 해설 가의 말대로 『남미 식이고 유럽식이고 간에 본선에 진출할 정도의 자격을 가졌으면 이제는 한국적인 축구를 구사해야 이길 승산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비록 축구뿐만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일하는 팀이나 조직에 있어서는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그런 면에서 특히 축구와 기업의 기술개발과의 관계는 외형상 이질적이면서도 운영 면에서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은 기업의 기술개발을 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축구나 기업의 기술개발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기술개발 분야에서도 이제는 지엽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한 단계 차원 높은 위치에서 기술개발의 운영을 돌이켜보고 그야말로 한국적인 기술개발을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내연구소도 경제성장과 함께 양적·질적으로 많이 발전되어 왔고 특히 기업연구소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 왔다.
또 근래에 와서 기술개발 과제도 소프트 화·시스템화 및 대형화돼 가는 추세여서 많은 전문인력과 투자·예산이 필요하게 됐다. 기술개발이 기업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져 경영층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기술개발운영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연구소의 실질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진국의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선진국 식 제도를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 년 전 종합연구소의 기술개발운영에 관해 일본 기업 계의 원로로부터 자문을 받았는데 그는 사막의 선인장을 칠판에 그리고 각 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선인장이 있음을 예시하면서 이 정도로 성장한 한국의 수준이라면 이제는 한국외 선인장을 개발해서 키워야만 진정으로 국제적인 경쟁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가 얘기한 그 한마디 「한국의 선인장」은 솔직하고 진심 어린 발전을 위한 마음에서 해준 얘기라고 믿고 싶다.
이제 생각해 보면 한국의 선인장, 한국적인 축구나 또 한국적인 기술개발은 서로 뜻하는 바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많은 분야에서 국제수준에 올라가 있고 이기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것으로 응용해 적용할 수 있는 한국적인 기술개발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약력>
▲50세 ▲서울대공대 자원공학과 졸 ▲미 유타 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기계공학박사) ▲국방과학연구소 ▲삼성종합기술원 부원장 ▲삼성항공 기술총괄(전무)겸 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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