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도 성 개방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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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도에도 성 개방의 물결이 서서히 일고 있다.
인도의 잡지·영화·법원 등에서 과거에는 금기시 되던 성 문제를 공공연히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의 경제성장에 따라 양산된 서구 지향적 중산층들 속에서 성 개방 무드는 확산일로에 있다.
작년말 수디르 카카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인도인의 성생활을 다룬 최초의 책『친밀한 관계』를 펴낸이래 성을 주제로 한 단행본·잡지 등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지난 6월 인도의 유명한 성과학자 프라카슈 코타리는『오르가슴, 새로운 차원』이라는 책을 출간, 성생활의 오르가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밖에 1년에 두 번 나오는 인도 유일의 독신자잡지가 6월부터 월간부록을 냈는가하면 지난 5월에는 인도최초의 동성애잡지「봄베이 프렌드」가 창간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성에 대한 인식도 훨씬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인도의 대중잡지「일러스트레이티드 위클리」지가 프리섹스에 대해 2천8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6∼25세 사이 청소년의 85%가 프리섹스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들 중 25세 이상은 70%가 프리섹스 찬성론자였다.
성의 자유를 누리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성의 순결에 대한 고정관념도 점차 깨져가고 있다.
과거 인도 힌두교 전통 하에서 여성의 순결은 결혼의 기본조건으로 요구되었었다.
20년 전만 해도 신랑은 거의 모두가 신부의 순결을 요구했으나 최근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인 수천명의 학생들 중 절반정도만이 순결을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전통적으로 성 문제에 보수적인 농촌지역에도 성 개방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농촌지역의 콘돔판매실적이 지난 85∼89년 사이에 2백%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성문제로 상담해오는 농부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자유로운 성생활·성 의식이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내 남편은 내 소유』라는 영화는 다른 남자의 정부라고 비난받는 한 유부녀를 다루고 있는데 그녀는 정부의 집에 옮겨 삶으로써 인도사회의 기존통념에 도전장을 보내고 있다.
성 개방의 확산 그 이면엔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라는 어두운 구석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봄베이 프로스티튜트라는 연구기관의 조사는 최근 3년 간 AIDS검사 양성반응자가 1만명으로 무려 5백%나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오르가슴, 새로운 차원』의 저자 프라카슈 코타리는『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여성들은 이제 성의 만족이라는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나의 연구초기단계인 18년 전에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변화들이다』고 말한다. 성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인도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도는 3세기께 힌두교의 성전『카마수트라』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현재 세계 각 국에서 성에 대한 고전으로 평가될 만큼 자유분방한 성의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힌두교 전통사회에서 성에 대한 금기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심지어 여성들이 그들의 성생활에 대한 단어조차 갖지 못할 정도다.
『친밀한 관계』의 저자인 수디르 카카르는 그 책에서 여성들은 보통 성행위를「일한다」로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아직 인도에선 결혼의 90% 정도가 중매에 의해 이루어질 만큼 자유연애는 제한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주요도시들의 코피숍·레스토랑이 밤이면 데이트하는 남녀들로 붐비고 있는 데서도 보듯이 성에 대한인식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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