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돈 주기 위해 금강산 관광 고안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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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사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7일 "금강산 관광사업이 북한 정부에 돈을 주기 위해 고안됐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입장은 북핵 실험으로 인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1718호)와 금강산 관광은 무관하다며 사업 지속 방침을 밝힌 우리 정부 입장과 정면 배치돼 한.미 간 갈등이 예상된다.

힐 차관보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미국.러시아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 개혁 측면에서 이해하지만 다른 사업(금강산 관광을 지칭)은 그만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개성공단 개발사업)는 인적 자본을 대상으로 한 장기 투자를 위해 고안된 것 같고, 다른 하나(금강산 관광)는 그보다는 북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두 프로젝트는 매우 다르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일본.한국.중국.러시아 순방을 하루 앞둔 16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대북 활동의 전반을 평가할 것이라는 점을 매우 분명하게 밝혀온 만큼 우리는 그 평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이 북한과 하는 일의 전반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라며 "그 결정의 많은 부분이 북한의 행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북한의 행동'이란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적하는 것으로,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 상응하는 어떤 조치를 취할지 주시하겠다는 뜻이다.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의 언급은 1998년 11월 시작한 현대의 금강산 관광이 9억 달러 이상의 달러 현금 지급으로 북한 정권의 주머니를 채워줬다는 부시 행정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안보리 결의 이행 문제와 관련,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건 없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안보리 결의에 포함되지 않는 순수 상거래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힐 차관보의 언급이 나온 직후 서울의 고위 당국자는 "유엔 결의안의 내용과 취지에 부합되게 금강산 관광을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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