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통과」에 강경 급선회/평민 의원직 사퇴 결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제출땐 파국 부를 수도/김대중총재 장외투쟁 시사
평민당의원들이 마침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기로 결의,정국에 사퇴회오리가 몰아치게 됐다.
평민당소속 전의원의 사퇴서는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에 제출될 경우 정국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불씨를 안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14일 저녁 민자당의 본회의 날치기 강행에 이어 열린 4시간여의 마라톤 의원총회끝에 의원들은 사퇴서를 작성,김대중총재에게 전달했다.
비장하고 침통한 분위기속에 열린 의총에서 김대중총재와 김영배총무를 제외한 61명 참석의원전원이 발언에 나서 한사람의 반대도 없이 의원직 사퇴를 결정했다.
김총재는 의원들이 사퇴를 결의한 뒤 『온갖 천신만고끝에 얻은 의원직이지만 국민을 위해서라면 이것이 옳은 길이라며 쾌히 내놓겠다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니 목이 멘다』고 한동안 말을 잇지못할 정도로 감정에 복받친 모습을 보였다.
김총재가 『여러분과 같이 당을 같이하고 민주화투쟁의 대오에 함께 서있다는 것을 이처럼 행복하게 느꼈던 순간은 없다』고 하자 일부 참석의원들은 함께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김태식대변인이 전했다.
의원들은 의총이 끝난 직후 사퇴서를 현장에서 직접 작성,총재에게 전달했으며 김총재는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김총재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악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해 앞으로 전개될 본격적인 장외투쟁을 간접 시사.
의원들은 보도진에게 공개된 회의막바지에 김태식대변인이 결의문 낭독을 마치자 박수를 치며 비장한 각오를 다짐.
의원들은 결의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우리의 비장한 결의에 대해 성원을 부탁드리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실 것을 빌어마지 않는다』고 호소.
의원들은 의원총회의장을 나서며 의원배를 모두 뗐고 김총재는 『참을대로 참았다. 새 국회를 만든다』고 혼잣말.
○…이날 본회의의 날치기 직후까지만 해도 평민당의원들은 갑자기 허를 찔린 탓인지 방향설정을 못한 채 한때 우왕좌왕.
그러나 오후 농성중이던 본회의장에서 146호실로 자리를 옮겨 비공개의총으로 들어가자 그동안 사태의 심각성들을 충분히 느낀 탓인지 일제히 의원직사퇴론을 전개.
일부 신중파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며 민자당이 내각제개헌론을 발의할 때 전면투쟁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세는 사퇴론이 지배.
의총중 이미 신기하의원등은 의원실로 나와 따로 의원직사퇴서를 쓰기도해 의원직 사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기색들이었다.
물론 평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결의의 직접적인 원인은 14일 민자당의 본회의 날치기 강행때문이지만 3당통합이후부터 공공연하게 예고돼 왔었다.
13대 총선을 통해 국민이 부여한 여소야대의 소명을 저버린 3당야합은 『반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인 장기집권 음모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하면서 13대 국회해체 조기총선을 요구해왔었다.
따라서 평민당의 일괄 의원직사퇴는 시기선택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었는데 일부 야당의원들의 사퇴서 제출과 본회의 날치기 통과가 그 시기를 재촉한 셈이 됐다.
그러나 평민당 지도부는 민주당의 사퇴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아직 본격적인 장외투쟁을 벌이기에는 국민적 정서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사퇴서 제출문제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날 의원들의 사퇴결의에도 불구하고 사퇴서 제출시기를 총재에게 일임토록 한 것은 국회에 사퇴서를 제출할 경우엔 곧바로 정국전체의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점때문에 평민당 지도부로서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국의 잠재적 도화선이 되어버린 이 의원직사퇴서가 앞으로 정국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는지 주목된다.<이재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