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보부상 국운 살리기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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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구한말 국운쇠퇴기에 사회천민계급으로 멸시를 받던 보부상집단이 주식회사형태의 집단을 형성, 자립경제확립을 통한 국운개척에 나섰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집단은 기존의 보부상 집단 중 가장 발달된 구조와 자치규칙도 가졌으며 병약자를 위한 치료소, 회원들의 공동묘지, 경비충당을 위한 전답까지 마련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상임 문화재전문위원인 최순희씨(57)가 13일 충남일대 보부상집단인「원홍주육군상무우사」를 발굴하면서 함께 발견한「청금록」「동아개진 교육회상무과세칙」등 관계책자 및 서류 20건을 통해 밝혀졌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보부상 집단인 상무사로는 경상도의 고령·창령, 충남 예덕과 한산 등을 중심으로 한 저산입구 뿐이었다.
봇짐(보)과 등짐(부)장수를 통틀어 일컫는 보부상은 사농공상이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제도에서 가장 하층으로 천대를 받아왔지만 애국을 표방, 사원간의 일치단결을 통한 자립경제 확립에 힘써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최 위원이 발굴한「원홍주육군상무우사」는 충남서해안에 인접한 홍주(홍성)·광주·보령·청양·대흥·결성 등 6개 군을 중심으로 하나의 상권을 형성한 상무우사단체다.
상무우사는 보부상집단인 상무사중 봇짐(우)에 비중을 둔 집단으로 등짐위주의 상무좌사와 구별되는 것.
이들 집단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청금록에 따르면 이들은1851년(철종2년) 대흥의 임인손이 초대 접장에 피선되는 것을 시초로 강력한 집단활동을 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집단은 본사 격인 본소와 함께 장이 서는 15개 지역의 지사에 해당하는 임소를 두고 운영됐으며 매년 정기총회를 열어 우두머리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근대적인 조직운영과 함께 총회 역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운영된 것도 특색중의 하나.
즉 임원을 개선하는 총회는 투표로 실시하고 15개 임소에 각 4표씩 배당, 60표의 기명투표제로 임원을 개선한 뒤 줄타기·난장·농악놀이와 함께 향연을 베풀고 관할지역의 시가행진까지 벌이는 제도도 운영했다.
이들은 특히 구한말 국운쇠퇴기를 맞아 상업을 통한 민지·민력을 계발키 위해「동아개진교육회」를 창설하고 주식회사형태인「충남상업주식합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본사를 행정요지인 공주읍에, 출장소나 지사를 각지방에 두었으며 자본금 3만원으로 현대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춰 운영됐었다.
이들은 이밖에 상행위 외에 자치적 자구책으로 회원 중 병약자를 위한 치료소를 마련하는 한편 사후대책으로 홍도원에 공동묘지도 구입했다.
또 관내 도처에 전답을 마련, 장례비·제례비·묘소유지비를 생산작물로 충당하는 등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행사와 생활 기반책까지 마련했던 것이다.
이 같은 상부상조의 전통은 여타 보부상 집단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있지만「원홍주육군상무우사」가 가장 조직적이고 근대적인 형태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숙대 유원동 교수는『이번에 발굴된 보부상집단은 보부상 중 특이한 조직으로 운영된 형태로 조선후기경제사 및 하층민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일제 때 대부분 사라진 전국 각처의 보부상 발견작업이 많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순희 전문위원은 이 같은 사실을 문화재위원회에 보고, 회의를 통해 중요민속자료 지정여부와 함께 전국 각지의 보부상 조사작업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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