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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힘의 최현수씨 1등 "가슴뿌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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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7일 끝난 제9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재미 한국인 성악가 최현수씨가 남성성악부문에서 한국국적으로 당당히 1위 입상하고 한국계 앨리사 박양이 바이얼린 부문에서 3위 입상하는 등 한국인의 음악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국제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음악도의 자세나 역량, 국가차원의 지원 등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이 콩쿠르에「내빈」으로 초청돼 모스크바 현지에서 진행과정과 시상식 등을 지켜보고 귀국한 피아니스트 한옥수 교수(단국대)의 참관기를 통해 세계 최고권위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이모저모와 한국음악의 문제점, 나아갈 길 등을 살펴본다.【편집자주】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는 30여개국에서 피아노부문 1백19명, 바이얼린 66명, 첼로 91명, 성악 62명이 각각 참가했다. 1차 예선에서는 피아노 40명, 바이얼린 32명, 첼로 30명, 성악 30명이 합격했다. 연주시간은 1차 예선 30분, 2차 예선 60분이며 3차 본선에서는 협주곡 2곡(차이코프스키 협주곡1곡은 필수)을 관현악단과 협연토록 했다. 채점은 25점을 만점으로 하여 점수를 매겼으며 가능성이 없는 연주자에게는 10점 미만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많았다.
2차 예선에서 분야별로 3차 본선 진출자 12명씩을 뽑았으며 하루에 첼로 2명, 성악 약7명, 피아노 2명, 바이얼린 2명씩으로 6일간 경연이 계속되었다. 엿새째 마지막날 저녁은 심사위원들이 늦게까지 그동안의 결과를 놓고 순위를 정하여 다음날 오전 1∼3시에 최종심사결과를 발표했다.
시상 내용은 분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이번 콩쿠르에서는 피아노부문에서 4등까지(3등은 2명)뽑고 6명에게는 디폴롬(등외입상증서)만 주었다.
바이얼린은 7등까지 뽑고 5명에게 디폴롬, 첼로는 4등까지 뽑고 2명에게 디폴롬을 주었는데 2, 3, 4등은 2명씩이었다. 성악에서는 남자 6명, 여자 6명이 각각 나뉘어 겨뤘는데 전원을 6등까지 입상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최종일 폐회식에서는 시상과 함께 각 부문 우승자의 연주회가 열렸다.
심사위원은 부문별로 20명 내외로 구성되었으며 주최측인 소련이 4∼5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은 각 부문에 약 2명씩 분배되었다. 성악부문에서 몽고와 중국이 참여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북한 평양예술대학의 백고산 학장이 바이얼린부문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반갑게 만났다.
그는 오는 초가을에 판문점 이북지역에서 윤이상씨의 작품만으로 연주회를 개최하는데 여기에 남한 음악인들을 초대한다고 했다. 8·15를 계기로 판문점 북쪽을 개방한다는 북한의 발표가 이 음악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는 한국인으로서는 피아노에 한국 5명, 북한 4명, 미국국적으로 3명 등 12명이 참가했다. 바이얼린에는 한국 3명, 북한 2명, 미국국적으로 4명 등 9명, 성악에는 한국 1명, 미국국적 1명, 북한 2명 등 4명, 첼로는 한국1명이 참가한 것으로 안다.
이미 보도된 대로 남성성악에서 최현수씨(한스 최)가 1등, 바이얼린에서 앨리사 박양이 3등을 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 국제콩쿠르에 참여해보았으나 이번처럼 소련인 들의 연주를 많이 들어본 적은 없다. 과연 그들은 최상의 수준에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연마하는 과정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졌다. 이 콩쿠르에 처음 참가한 한국 음악도 들은 거의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
귀국하니 불미스러운 헛소문이 들려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소위「돈 봉투 소동」때문에 한국의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탈락했다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모스크바에 있으면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다.
탈락의 구실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우리의 누추한 면모를 다시 한번 보게된 것 같다.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로 음악인의 긍지는 물론 국가적인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 음악도 들이 이 같은 국제콩쿠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 자세가 우선 필요하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일본의 파이어니어사가 그 경비를 전부 지원했다.
바이얼린 부문에서 일본의 아끼코 스와나이양이 우승한 것은 이 같은 일본의 국가적 지원의 결과라고 본다. 일본측은 콩쿠르 출전연주자들의 숙소를 마련해주고 음식·물까지 본국에서 수송, 영사관에 보관해 놓고 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교수들도 참석하여 모든 연주를 비디오로 녹음하며 좋았던 점, 시정해야할 문제점, 연주의 태도, 음악적 표현 등 그 연주에 대해 낱낱이 분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최현수씨는 좋은 성량과 최고의 연주로 많은 상을 받았다. 정말 자랑스러워 감격의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입상 후에 국가가 보내주는 축하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조금만 더 관심을 보인다면 연주자들이 나라의 뒷받침에 용기 백배해 국제 무대 에서 더 좋은 성과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
4년 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도전하려는 음악도 들을 위해 몇마디 부언한다. 세계는 좁아지고 있다. 콩쿠르가 거듭될수록 음악적 해석과 연주가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이다. 사실 이것은 반짝이는 진주알을 찾으려는 콩쿠르의 본래 목적과는 모순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좀더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적 표현이 중요시될 것이며 또 그것으로만 인정받게 될 줄로 믿는다.
현재 1주일에 두세번의 레슨을 받는 모스크바음악원의 학생들에 비하면 우리 음악도들의 연습량은 너무 적다. 그렇지 않아도 체질적인 핸디캡이 있는데 연습량까지 떨어진다면 우리는 어디에다 기대를 걸 것인가. 또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그러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들에 대한 정부·기업·국민의 국가적 차원에서의 사랑과 이해, 성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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